창업 과정을 다룬 서적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유튜브 동영상도 쏟아집니다. ‘사장의 맛’은 진짜 창업가가 자기 이야기를 전합니다. 실전 MBA인 셈이죠. 선배 창업가가 후배에게 알토란 비법을 공유합니다.

간편식(HMR) 전문 푸드몰과 레시피 동영상채널 ‘쿠캣’, 국내 최대 음식 커뮤니티 ‘오늘 뭐 먹지?’를 운영하는 기업 쿠캣. 쿠캣은 지난 1월 GS리테일로부터 550억원을 투자받았습니다. IT 기반 쇼핑몰과 콘텐츠 서비스 홍수 시대, 쿠캣이 인정 받은 겁니다.

그런데 쿠캣 창업자인 이문주 대표는 기술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고려대 심리학과 출신으로 창업은 커녕 취업 준비도 없었던 뮤지컬 마니아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이런 성공을 거뒀을까요?

모기업 GS리테일이 능력을 인정, 지분을 넘기고도 대표직을 맡고 있는 이문주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것 중에서 후배 창업가들과 공유하고 싶은 부분을 3개만 꼽아주세요.” 이 대표의 답은 (1)사업 아이템이 애착이 있어도 집착하지 말라 (2) 5분 안에 사업 모델을 완벽히 설명해야 투자 받는다 (3)너랑 나랑 공평하게 동업하자 이건 안된다 이렇게 요약됩니다.

쿠캣 창업자 이문주 대표가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쿠캣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이건 정말 천재적 아이디어? 그런 건 없다

이 대표의 첫 사업 아이템은 주변에서 원하는 장소를 찾아주는 ‘모두의 지도’였습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이 대표를 창업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도 모두의 지도라는 사업 아이디어 때문이었습니다. 계약서 초안까지 썼던 투자가 물거품되고 빚을 떠안은 채 함께 팀을 꾸렸던 이들까지 한 순간에 떠나는 악화일로 속에서도 이 대표는 모두의 지도라는 사업 아이템만은 유지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오늘 뭐 먹지?’와 손을 잡은 뒤 과감하게 자식과도 같았던 모두의 지도를 버립니다. “당시 ‘오늘 뭐 먹지?’는 구독자가 200만명 정도 됐어요. 모두의 지도는 출시한 뒤 확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오늘 뭐 먹지?’를 바탕으로 콘텐츠 사업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어요. 바로 모두의 지도 서비스 중단을 했죠.”

-애착이 있는 사업 아이템이었는데, 모두의 지도를 버릴 때 아쉽진 않았나요?

“물론 엄청난 애착을 갖고 있던 아이템이었죠. 그런데 (버리는) 결정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오늘 뭐 먹지?’를 하는 게 상황상 맞다고 봤어요. 그래서 시원하게 오케이 ‘오늘 뭐 먹지?’로 가자고 결정했죠.”

이 대표의 ‘더 나은 게 있다면 이전 건 버리고 나아간다’는 원칙은 이때 한 번만 적용된 게 아닙니다. 쿠캣은 ‘오늘 뭐 먹지?’를 기반으로 기존 상품을 위탁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 ‘오먹상점’을 2017년 12월부터 운영했습니다. 월 매출이 7억원에 달하는 나름 잘 나가는 쇼핑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2019년 5월 오먹상점을 예전 모두의 지도 때와 마찬가지로 버렸습니다.


“처음 오먹상점을 없앤다고 했을 때 직원들 반발이 심했어요. ‘대표가 미쳤다’는 말도 나왔죠. 저는 맞다고 생각하면 그냥 가차 없이 바꾸는 성격이에요. 오먹상점의 경우 다른 회사 제품의 위탁 판매가 위주였고 외부에서 개발한 홈페이지를 사용했어요. (위탁 판매를 하다보니) 배송도 제각각일 수 밖에 없었고, 외부에서 개발한 홈페이지를 쓰다보니 고객 데이터를 온전히 볼 수가 없었어요. 우리 데이터를 확실히 모으고 그걸 바탕으로 마케팅까지 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개발한 자사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오먹상점을 폐쇄하고 쿠캣마켓을 만든 거죠.”

결국 이 대표의 결정으로 쿠캣마켓은 성장궤도에 올랐습니다. 2020년 5월에는 서울 코엑스에 쿠캣마켓 스타필드 코엑스몰점을 오픈하고 홍콩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됩니다.

◇투자자 피칭은 ‘5분짜리 공연’...30초마다 핵심단어

“열정과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든 투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잘 나가다가 갑자기 왜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가’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의 말 뒤에는 이런 내용이 생략돼 있었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대하던 투자금이 안 들어오고, 팀원들이 떠난 최악의 상황에서 이 대표에겐 한 푼의 투자금이 절실했습니다. 그때 이 대표는 ‘고벤처포럼’이란 곳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고벤처포럼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대한민국 모든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위한 열린 네트워크’라고 소개돼 있네요. 조선일보 기사를 찾아보니 ‘2007년부터 매달 창업가와 엔젤투자자, 벤처투자자들이 모여 서비스를 소개하고 투자 유치가 이뤄지는 자리’라고 합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중단됐습니다.

당시 이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 이 대표는 “진짜 열심히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5분에 맞춰서 대본을 쓰고 외운 건 당연하고요. 매 30초마다 어떤 단어가 딱 나와야 하는지까지 외웠어요. 5분에 맞춰서 딱 끝내고 끝나기 직전에 ‘저희 이렇게 클 겁니다’라고 외치겠다고 생각했죠. 공연을 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했어요.”

그는 5분 발표를 위해 1주일 넘게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예상되는 질문을 A4용지 2장에 빼곡히 적어놓고 답변을 또 다 외웠다”며 “내가 생각해도 발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당시 고영하 고벤처포럼 회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 아이템이 좋은 건 잘 모르겠는데, 말은 정말 재밌게 잘 하네. 내가 (투자자) 한 명 소개시켜줄게요.” 이 대표에게 처음 5000만원을 투자한 엔젤 투자자가 바로 이 대표의 발표를 들은 고 회장이 소개해준 사람이었습니다.

이후의 투자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교수님으로부터 미국에서 벤처 투자를 하는 지인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며 “그 분과 강남역에 있는 커피빈에서 만나서 원형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펴놓고 저희 이렇게 클 거라고 열심히 설명했더니 바로 5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쿠캣의 대표상품인 매콤크림 닭갈비 /쿠캣

◇ 동업자 너를 믿는다? 사업은 동창회가 아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은 동업을 생각하게 됩니다. 혼자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 많을테니까요. 이 대표에게 동업에 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이 대표 역시 “창업은 혼자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1인 창업은 특별한 기술을 가진 장인이 뭐 하나 만드는 거라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으로서 사업을 키우려면 좋은 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좋은 팀의 기준이 뭐라고 보세요?

“저는 좋은 팀은 각자가 각 영역에서 특화된 사람들로 구성된다고 생각합니다. 밖에 나가서 말을 잘하고 설득을 잘하는 사람, 방향제시를 잘하는 사람, 개발 잘하는 사람, 디자인 잘하는 사람, 내부 경영 관리 잘하는 사람처럼 각자 결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야 좋은 팀이 되는 거죠. 똑같은 사람들만 모여 있으면 의미가 없어요.”

-팀을 꾸리면서 지분 문제도 정리가 필요하잖아요

“창업할 때 공동체처럼 팀을 만드는 경우가 있어요. 5명이 시작했다고 하면 지분을 20%씩 똑같이 나누는 거죠. 이런 경우는 이도저도 안 된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공유지의 비극이 생기지 않게끔 누구 한 명이 키를 쥐고 갈 수 있게 제대로 된 대표이사가 한 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표이사라면 남들보다 지분을 더 받더라도, 다른 팀원들과 지분이 똑같지 않더라도 납득시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되겠죠. 예를 들어 대표이사가 지분 80%를 갖고 나머지 4명이 지분 20%를 나눠가졌는데 다른 팀원들이 ‘야 네가 뭔데 그렇게 지분을 많이 가져가’라고 한다면 그건 좋은 팀이 아닌 거죠.”

-그럼 대표는 어떻게 팀원들을 설득하죠?

“팀원들이 ‘그래 대표 믿고 있으면 내 지분이 엄청 커지겠구나’란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죠. 그래서 대표는 설득력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나를 믿고 따라오면 어떻게든 될 거야’란 아우라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대표가 돼야 하는 겁니다.”

쿠캣의 대표제품인 쿠가네 감자탕 /쿠캣

인터뷰를 마치며 이 대표에게 ‘사장의 맛’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초기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행력이라고 생각해요. 가만히 있으면 되지 않으니까. 저는 엄청 똑똑한 편은 아닌데, 그래도 그냥 액션(실행)을 잘했던 것 같아요. 그런 얘기 있잖아요. 너무 똑똑하면 재다가 아무 것도 못한다고. 사실 창업이라는 건 성공 확률로 따지면 너무 낮아요. 리스크만 생각하면 아무도 못할 거예요. 다들 전략 컨설팅도 받고 시장 분석도 하고 액션 플랜 다 잡고 하려는데, 그러면 늦을수 있어요. 그러느니 한 번 이거 만들어보자, 뚝딱뚝딱 만들고 반응이 있다면 집중하고, 아니면 ‘이거 아니었네’ 하고 빨리 접는 거죠.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그게 스타트업이죠. 어차피 세상에 주어진 정보들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몸으로 부딪혀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