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팜유 가격이 처음으로 t당 140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년 전 코로나 팬데믹 초기와 비교하면 가격이 배 가까이 뛰었다. 세계 최대 팜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가 오는 28일부터 자국 내 가격 안정을 위해 식품용 팜유와 팜유 원료물질 수출을 금지하기로 결정하면서 팜유 가격은 앞으로 더욱 치솟을 전망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곡물·식품 원료 가격 급등세가 국내 물가를 전방위로 압박하는 가운데, 팜유를 쓰는 국내 식품업계와 화장품 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아모레퍼시픽이 25일부터 일부 품목 가격을 평균 10%가량 인상하는 등 그 파장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2년 사이 95% 뛰어오른 팜유 값
팜유는 야자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기름이다. 라면·과자를 튀길 때 주로 쓰이고, 초콜릿에도 들어간다. 비누·화장품 제조에도 쓰인다.
26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팜유 수입량은 6만2192t, 수입액은 9038만달러로 집계됐다. t당 가격은 1453달러로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었던 2008년 팜유 수입 가격은 t당 1316달러(6월)까지 치솟았는데 이를 뛰어넘은 것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팜유 가격은 40.6%가 올랐고, 코로나 확산 초기인 2020년 3월과 비교하면 95.1%나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콩기름·카놀라유·해바라기씨유 글로벌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대체재인 팜유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급등한 것이다.
여기에 오는 28일부터 인도네시아의 수출 금지 조치가 시작되면 팜유 가격은 앞으로 더욱 무섭게 뛸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기준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팜유의 양은 전 세계의 57%가량 정도다. 한국도 수입 팜유 전체 물량에서 인도네시아산(産) 비율이 57%에 이를 만큼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화장품 가격도 동반 상승
수입 팜유 가격 상승은 이미 국내 화장품 가격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수출 금지를 예고하기 전부터 비누·화장품에 쓰이는 가공용 팜유 가격이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은 25일부터 9개 브랜드의 83개 품목 제품 가격을 평균 10%가량 인상했다고 밝혔다. 헤라 블랙 쿠션, 설화수 윤조 에센스, 설화수 퍼펙팅 쿠션 등의 가격이 올랐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화장품의 기초 원료인 팜유와 글리세린의 국제 가격이 급등한 데다 포장재와 해상 화물 운송비도 상승해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다른 화장품 업체들도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한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거리 두기 해제를 맞아 화장품 공급 물량을 늘리려는 와중에 인건비에 원자재 값까지 치솟다 보니 제품 값을 현 수준에서 동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과자·라면 가격 치솟나
국내 라면·제과 업체들도 사태 장기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라면·제과 대기업 상당수는 현재 말레이시아산(産) 팜유를 사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산 식품용 팜유 공급이 끊겨도 당장은 버틸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장기화되면 인도네시아산에 의존하던 중소 업체들이 대체재를 찾아나서면서 말레이시아산 팜유 가격도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밀가루·설탕 가격 인상 여파로 지난해부터 계속 올라온 라면·과자 가격이 팜유 파동으로 또다시 동반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1위 라면 업체 농심 관계자는 “말레이시아산 팜유 2~4개월치 물량을 비리 비축해 놓은 상태라서 당장은 피해는 없지만 내부에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푸드 관계자도 “사태가 지속되면 생산에 차질을 겪을 수도 있어서 상황을 면밀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