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벼워질 때, 여름의 물보라, 봄맞이 대청소, 최고의 케이크 레시피를 찾아서, 보물 사냥꾼….’
프랑스 영화 제목이 아니다.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가 자사 매장 쇼윈도를 꾸밀 때마다 붙였던 제목이다. 에르메스는 명품 업체 중에선 거의 유일하게 모든 매장의 쇼윈도 디자인을 해당 국가 출신 작가에게 의뢰하는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나라마다 창의적이고 독특한 쇼윈도 디자인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국내에선 지난 2006년부터 국내 매장 쇼윈도 작업을 대부분 우리나라 출신 작가에게 맡겨왔다.
지난 7일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국내 최대 규모로 매장을 열면서도 에르메스는 독일과 한국·일본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최재은(69)에게 새 쇼윈도 작업을 맡겼다. 이번 주제는 ‘가벼움의 미학(Lighthearted!)’이다. 평소 생태와 유한(有限)한 시간이란 주제에 관심이 많은 최 작가가상업 브랜드의 쇼윈도 작업을 한 건 사실상 처음이다. 최 작가는 에르메스가 내건 주제를 확장, ‘무소유(無所有)’라는 키워드를 부각시켰다. ‘꼭 필요한 것만 사는 삶이 진정 가벼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해 최대한 여백을 살렸다. 상업적인 제품을 전시하는 쇼윈도 작업과 배치되는 아이러니한 메시지다. 에르메스 판교점은 개점 이후 연일 고객이 몰려 줄을 서는 소위 ‘오픈런’ 현상을 빚고 있다. 최 작가는 “사람들이 자꾸만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설수록 백화점 쇼윈도엔 오히려 ‘그럴 필요 없다’는 메시지가 걸려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간 에르메스 쇼윈도 작업엔 지난 2006년부터 배영환·지니서·권오상·김동희·정연두·잭슨홍·길종상가·박천욱이 참여했다. 올해 가을 신세계 강남점 쇼윈도는 박천욱 작가가 작업했다. 올해 에르메스가 내건 ‘가벼움의 미학’이란 주제를 박 작가는 ‘내가 가벼워질 때’로 재해석해 하늘로 떠오르는 열기구로 표현했다. 잭슨홍 작가는 지난 여름 주제였던 ‘여름의 물보라’를 상상 속 워터파크로 재현했다. 가방 모양의 수영장으로 뛰어드는 여인의 모습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