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이달 말 만두 가게를 열 예정인 이모(34)씨는 3개월 전 구인 사이트에 올린 공고를 계속 수정하고 있다. 당초 주 5일제 매니저를 구한다는 공고를 냈지만 연락이 단 한 통도 오지 않아 주 4일 근무로 바꿨다. 하지만 “주 3일 이하로 일하면 안 되겠느냐”는 연락만 이어졌다. 이씨는 결국 채용 조건을 주 1~2일 근무로 바꿨다. 그는 “개업이 코앞인데 필요한 직원 10명 중 6명밖에 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거리 두기 해제에 따라 외식·여행 같은 외부 활동이 늘고, 산업 현장도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일할 사람이 없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수요 감소 직격탄을 맞아 직원을 잔뜩 줄였던 자영업자, 여행업계,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더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노동력 비중이 큰 숙박업·음식점업·제조업은 인력 부족 규모가 작년 상반기 14만명에서 올해 상반기 25만명으로 늘어났다.

인력난이 심각해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MZ세대의 초단기 ‘쪼개기 근무’로 대응한 식당, 실버 인력 채용과 서빙 로봇 도입을 병행한 식당 사례 등을 담은 인력난 대응 지침을 만들어 지난 1일 외식업계에 배포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 단체 연합 회원들과 함께 8시간 추가연장근로 일몰제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이들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원자재가격 폭등과 함께 유례없는 인력난으로 현상 유지조차 어려운 실정이라며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일몰 연장'을 국회에 촉구했다.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는 3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주52시간제 적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22년말까지 주 8시간 연장근로를 한시적으로 허용한 제도다. 2022.12.8/뉴스1

해외여행이 재개되며 여객 수요가 회복되고 있지만 여행·항공업계는 팬데믹 기간 감원 여파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특히 항공기 이륙 전 기내 청소, 화물 적재, 급유, 정비 작업을 하는 지상 조업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대한항공의 지상 조업을 맡고 있는 한국공항은 코로나 이전 3000여 명이던 직원이 2600여 명까지 줄었다. 아시아나항공의 계열사 아시아나에어포트도 2019년 말 2226명에서 올해 3분기 말 1761명으로 줄었다.

이 업체들은 올해 100명 이상을 추가 채용하려 했지만 수십 명에 그쳤고, 청소 등 단순 업무 인력을 제공하는 협력업체들은 아예 채용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코로나 기간 적자가 누적돼 최저임금 수준인 급여를 올려주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여행사도 절절 매고 있다. 하나투어는 지난 9월 기준 직원이 1204명으로 2019년 9월 대비 절반 이상 줄었고, 모두투어·노랑풍선·참좋은여행 같은 다른 여행사도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직원이 40% 이상 줄었다. 최근 패키지 여행 등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코로나 때 여행업계가 겪은 악몽을 목격한 젊은 층이 외면하면서 신규 직원 채용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업계 전반 주 5일 상근직 기피”

이런 인력난은 코로나19 기간 확산한 재택근무, 초단기 근무 같은 유연 근무 방식에 젊은 층뿐 아니라 중장년층 역시 익숙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코로나 기간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거 한국을 빠져나간 여파도 있다. 박호진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사무총장은 “코로나 이전에 비해 10만명 정도 일손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고깃집을 하는 송모(40)씨는 “실업급여 액수가 늘면서 구직 노력만 할 뿐 실제 일을 하지는 않는 얌체 구직자가 늘어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인력난에 대응하기 위해 자영업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경기 김포시에서 직원 25명을 고용해 식당 3곳을 운영 중인 이모씨는 정직원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은 모두 아르바이트로 채용하고 있다. 직원들이 주 5일 근무하는 상근직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직원 전원이 참여한 업무용 대화방에서 주 단위로 각자 희망하는 요일과 시간을 올려 최소 주 1회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초단기 근무 체계’를 만들었다. 매장 10곳을 가진 숯불구이 식당 ‘강강술래’는 서빙 로봇을 도입하고 하루 2~5시간 정도 청소나 설거지 등 비전문 업무를 맡는 노인 일자리 채용으로 대응했다.

◇글로벌 인력난… 비자 특혜 주고 빗장 풀고

코로나 이후 인력난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코로나 방역 봉쇄에 따른 국가 간 노동자 이동 감소, 고령화에 따른 은퇴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신용 조사 기업 제국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지난 10월 ‘정규직 부족’을 체감하는 일본 기업 비율은 51.1%로 절반을 넘었고, ‘비정규직 인력 부족’ 응답 기업도 31%로 코로나 확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업종별로 여관, 호텔, 음식점 등 서비스업의 인력 부족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질랜드도 2020년 3월 코로나 사태로 영주권 심사를 중단한 뒤 기술 이민자들이 떠나 인력난이 가중됐다. 실업률은 감소했지만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졌고, 인력난이 계속되자 작년부터 절차를 간소화한 일회성 특별 영주권을 발급하고 올해 8월부터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체류 기간을 6개월 연장했다. 코로나로 입국하지 못하면 입국 기한을 내년 1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연장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 한도를 2배로 늘리는 응급 조치에 나섰다. 독일은 극심한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퇴직 연령인 67세보다 3~4년 앞서 은퇴하는 조기 퇴직자 비율을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