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입 위스키 시장은 2019년에서 2021년 사이 58% 성장했다. 위스키를 구입한 사람 중 2030세대는 51.3%에서 70.8%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20대의 위스키 음용률은 3%, 여성의 비율은 7% 늘기도 했다. 이 시기는 코로나로 회식, 만남, 모임이 뜸해지던 시절과 겹친다. 기존 대세였던 스카치위스키뿐 아니라 몰트위스키 등 고가 위스키 카테고리도 각각 60% 정도 성장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1년 위스키 수입액은 1억 7534만 달러, 한화로 약 2100억 원 정도로 전년 대비 32%가량 늘었다.

배대원 글렌피딕 앰배서더./톱클래스

위스키를 구입하는 곳도 고풍스러운 바나 면세점만 있는 건 아니다. 편의점 GS25의 최근 3년간 주류 판매 데이터를 보면 위스키 매출이 동기 대비 60.8% 늘었다. 위스키에 다른 음료를 섞어 마시는 하이볼 문화가 퍼지면서 위스키 보완재인 토닉워터도 54% 더 많이 팔렸다. 이런 수치는 위스키 향유층이 더 젊고 넓어졌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밸런타인’은 모델을 정우성, 이정재에서 주지훈, 샤이니 민호로 교체했다. ‘더블유바이윈저’는 새로운 캠페인에 류준열을 모델로 발탁했다. ‘글렌피딕’은 래퍼이자 아티스트인 송민호와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글렌피딕의 유일한 한국 앰배서더인 배대원 앰배서더는 ‘업소에서’ ‘접대용으로’ ‘아저씨들이 즐기는’ 술로 여겨졌던 위스키가 선입견이라는 진입장벽을 깨고 더 많은 이들의 잔 속에 흐르게 된 것이 반갑다고 했다.

앰배서더는 어떤 일을 하나요.

“글렌피딕과 위스키 문화를 알리는 게 제 일입니다. 인간 글렌피딕이나 다름없죠(웃음). 싱글몰트가 무엇인지부터 어떻게 즐겨야 하고, 취향은 어떻게 찾으면 될지를 안내하는 역할이에요. 교육도 진행하고 가이드도 합니다. 올해는 글렌피딕의 새로운 제품이 오랜만에 출시돼서 더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글렌피딕 위스키는 병이 특이하네요. 삼각형 모양 같기도 하고요.

“(뒤편의 바를 가리키며) 위스키 종류가 정말 많아요. 그중에 눈에 띄려면 디자인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죠. 글렌피딕 병의 삼각형은 위스키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물, 공기, 맥아를 상징해요.”

스스로를 ‘성공한 덕후’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위스키를 접한 건 20년 전이었어요. 무역회사를 다니던 아버지가 해외 출장을 마치고 위스키를 사 오셨어요. 싱글몰트라고 적혀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낯설었죠. 마셔보니 입에 맞고 재밌었어요. 지금까지 마셔본 위스키와는 다르더군요. 블렌디드 위스키와 달리 싱글몰트는 뭔가 더 개성이 뚜렷했어요.”

맛이 재밌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세상에 같은 위스키가 없다는 거죠. 스코틀랜드만 해도 싱글몰트 증류소가 130군데 정도 있어요. 그 증류소들이 생산하는 위스키의 풍미가 모두 다르고, 얼마만큼 숙성했느냐에 따라 12년, 15년, 18년, 21년이 다 다르죠.”

이후론 위스키에 빠졌고요.

“해외 위스키 서적을 읽어보니 위스키는 술이라기보다 하나의 문화더라고요. 그 방대한 세계를 알고 싶어 자연스럽게 동호회에 들어갔고, 온라인 시음회도 했어요. 이후론 위스키 관련 일을 거의 다 해본 것 같아요. 지금은 브랜드 홍보를 하고 있지만 직접 수입하고 유통하는 전반적인 시스템도 경험했죠.”

/톱클래스

앰배서더가 되면 스코틀랜드에 있는 글렌피딕 증류소에 매년 다녀온다고 들었습니다.

“글렌피딕 증류소의 특징 중 하나는 자체 병입 시설이 있다는 거예요. 위스키를 만들 때 처음부터 끝까지 천연샘물인 ‘로비듀’만을 사용하죠. 마지막 병입 과정에서 알코올 도수를 40도 또는 43도로 맞추려고 물을 쓸 때도 로비듀를 넣는 거의 유일한 증류소예요.”

오크통을 직접 만드는 것도 거의 유일하고요.

“위스키 풍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오크통이에요. 글렌피딕 오크통은 쿠퍼리지에서 만들어지고 이를 만드는 장인을 쿠퍼라고 해요. 오크통을 만드는 것도 4년에서 6년을 배워야 하는 기술이죠. 접착제나 나사,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잘라 직접 연결한 후 미세한 틈을 짚으로 메우거든요.”

숙성창고가 어떤 땅에, 어떤 습도와 온도에 있느냐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지겠군요.

“몰트의 당분을 추출하고 식혀서 효모를 넣어 발효하면 맥주가 되는데 이때 도수가 9도 정도예요. 스코틀랜드 위스키법령에 따라 두 번 증류하죠. 처음 증류를 하면 20도로 도수가 오르고 두 번째는 70도가 돼요. 이때 ‘하트(heart)’ 즉 심장이라 불리는 정수만 뽑아서 만듭니다. 처음엔 투명했던 원액이 숙성을 거치면서 호박색 액체로 변합니다. 알코올 도수를 63.5도 정도로 맞춰 오크통에서 숙성하죠.”

그렇게 12년, 15년, 18년을 숙성하면 맛이 달라지는 게 살아 있는 생물 같기도 합니다.

“같은 맥아나 증류수로 만들면 맛이 같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아요. 위스키 원액이 호박빛으로 변하는 건 오크통에 있는 여러 성분과 섞이기 때문이죠. 계절에 따라 오크통이 젖었다 마르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 해에 2% 정도 날아가는데 이를 ‘천사의 몫’이라고 불러요. (잔에 담긴 글렌피딕 위스키를 가리키며) 향을 맡아보면 12년 숙성 위스키는 상큼한 과일향이 나고, 15년은 좀 더 달콤해요. 18년 숙성은 우디해지죠.”

정말 천사가 다녀가는 것 같네요.

“위스키는 더하기 빼기 곱하기의 예술이에요. 먼저 더하기는 향과 색이 우러나는 거죠. 숙성되면서 2%씩 증발하는 건 빼기입니다. 이때 나쁜 향이 날아가요. 마지막으로 곱하기는 상호작용입니다. 숙성은 다시 말해 산화인데 없던 풍미가 생기는 거죠. 그건 어떤 방법으로도 모방하기가 힘듭니다. 그동안 여러 방법으로 시간을 줄이고, 향을 만드는 법을 시도해봤어요. 화학식을 이용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실패했어요. 위스키가 ‘시간이 제일 비싼 술’인 이유죠.”

배대원 글렌피딕 앰배서더./ 톱클래스

시간이 하는 일을 과학이 대신할 순 없군요.

“그래서 그렇게 말해요. 위스키 증류는 과학이지만 블렌딩은 예술이다. 숙성은 신의 영역이다.”

위스키가 발효주나 다른 술에 비해 숙취가 덜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정말 그런가요.

“위스키를 분해할 때도 몸속에 산소와 물이 필요하니까 숙취가 없을 순 없겠지만(웃음), 숙취가 덜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아요. 먼저 위스키는 그렇게 급하게 마시지 않아요. 폭탄주를 돌리거나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요. 위스키는 한 모금씩 음미하며 천천히 마십니다. 그러니 숙취가 덜할 수 있죠. 두 번째는 증류와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질 좋은 알코올만 남게 돼요. 그런 면에서 몸에 무리가 덜할 수 있고요.”

우리가 익히 양주잔으로 알고 있는 좁고 길쭉한 잔은 위스키 시음용으로 추천하진 않는다고요.

“그걸 샷잔이라고 부르는데 코로 향을 즐길 틈이 없어요. 입구가 좁아서 입에 털어넣으면 향을 느낄 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요. 어떤 술은 목 넘김이 좋다고 하는데 실제로 맛은 목으로 느끼는 게 아니거든요. 목이 느끼는 건 통각이에요. 향을 느끼거나 입에 머금는 시간이 없는 게 안타깝죠.”

현장에서 행사, 클래스를 진행해보면 위스키를 대하는 태도나 문화가 달라진 걸 실감하나요.

“몇 년 새 부쩍 위스키에 대한 관심과 경험이 늘었습니다. 위스키 행사라고 하면 40대 남성들이 올 것 같은데 20대 대학생들이 많이 옵니다. 여성들도 많이 찾고요. 여성들이 본인의 취향을 알고 미식(美食)을 하는 데 적극적이라는 느낌입니다. 이들은 많이 마시진 않아요. 단, 좋은 걸 마십니다. 그걸 업계에서는 ‘Drink Less, But Better’라고 해요.”

같은 양주인데도 위스키가 와인에 비해 대중화가 늦은 건 왜일까요.

“아무래도 알코올 도수가 높은 것에 대한 벽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위스키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을 테고요. 국내에서 싱글몰트는 개성이 강한 술이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런데 개성이라는 게 꼭 강하고 특이한 뭔가가 아니라, 부드러운 것도, 균형이 잘 맞는 것도 개성이 될 수 있거든요. 싱글몰트가 알려지고 개인의 취향과 맞물리면서 나에게 맞는 걸 찾아가는 재미가 생긴 거죠. 수백, 수천 가지의 테이스팅이 가능하니까요.”

위스키가 대중화되는 이 시점에 보람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면요.

“제 이야기를 듣거나 클래스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됐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 제일 기분이 좋죠.”

안타까울 때는요.

“위스키를 즐기는 분들이 진지한 자세로 임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매일 필요는 없거든요.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어떻게 마셔야 하나요’인데 저는 그때마다 드링킹과 테이스팅을 구분하라고 합니다. 맛의 차이를 느끼는 건 테이스팅이지만 친구들과 행복하고 즐겁게 마시는 건 드링킹이에요. 이 둘을 섞으면 분위기가 애매해질 수 있어요(웃음). 위스키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겐 ‘이 술은 피니시가 어떻고 미들이 어떻고’ 하면 실례가 될 수 있으니까요.”

집이나 바에서 혼술하기 좋은 술로도 위스키가 꼽힙니다.

“와인은 한번 오픈하면 비워야 하는 부담이 있고 샴페인도 탄산이 날아가는데, 위스키는 한잔 마시고 뚜껑 덮어 세워놓으면 오랜 시간 혼자 즐기기 좋아요. 그날의 컨디션이나 분위기에 따라서 고를 수 있고요.”

위스키에 가장 좋은 안주는 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보통은 얼음을 많이 넣어서 마시는데 저는 ‘니트’를 추천해요. 니트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상온의 위스키를 조금씩 마시는 방법이에요. 여기에 상온의 물을 소량 떨어뜨리면 향이 더 잘 퍼지죠.”

위스키와 함께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취향도 달라지나요.

“처음에는 과일향과 달콤한 향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담백한 스타일이 좋더라고요. 요즘엔 스모키한 스타일을 즐기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위스키뿐 아니라 취향도 달라지는 게 위스키 마시는 재미인 것 같아요.”

앰배서더가 된 후로는 어깨가 무겁기도 하겠습니다. 인간 글렌피딕이라니 취할 수도 없고요(웃음).

“힘들 때 쉬러 갈 곳이 없어진 느낌이긴 해요. 바에 가는 게 휴식이고 바텐더분들이 친구였는데, 이젠 공식적인 관계가 됐으니까요. 지금 가장 위스키가 맛있을 때는 ‘나이트 캡’이에요. 아이들 다 재우고 자기 전에 먹는 한잔이요. 서재에서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고 한 모금씩 마실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도 길었지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전쟁에 비하면 짧은 편이다. 현재까지도 이 승부는 가려지지 않아 스코틀랜드는 자신들이 원조라고, 아일랜드는 자신들이 그렇다고 믿는다. 위스키 전쟁은 자존심 싸움에 다름없는데 스코틀랜드의 대표적 위스키 브랜드인 글렌피딕은 이 자존심의 정수다. 글렌피딕은 골짜기를 뜻하는 게일어 글렌(Glen)과 사슴을 뜻하는 피딕(fiddich)의 합성어다. 사슴이 마시는 물처럼 맑고 청아하다는 의미다. 술맛에서 물이 절대적인 건 동서양을 막론한다. 실제로 이 물은 ‘로비듀’라 불리는데 오직 글렌피딕 위스키를 증류하는 데 쓰인다.

다른 어떤 것도 섞지 않고 하나의 증류소에서 만드는 ‘싱글몰트’ 위스키를 대중화한 글렌피딕은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에서 탄생했다. 1887년 크리스마스였다. 포도는 자라지 않고 오직 곡물만 자라는 땅에서 최고의 위스키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설립자 윌리엄 그랜트의 뜻을 따라 글렌피딕은 지금까지 전통적인 생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5대째 후손들이 이어오는 가족 경영 회사다. 증류, 숙성, 병입의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몰트 마스터는 장인에 가깝다.

장인의 손에서 한 땀 한 땀 빚어지나 숙성은 하늘에 맡겨야 하는 위스키는 신의 물방울이자 생명의 물(위스게바하, Usquebaugh ; 게일어로 생명의 물이란 뜻, 위스키의 어원)이다. 한입 머금은 그 순간 진하고 퀴퀴하게 시작해 강렬하게 폭발하고 금가루처럼 부서지는 환희가 입안에 가득 차는 건 위스키가 시간을 머금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그 시간의 바다를 지나 한국에서도 위스키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배대원

세계적인 싱글몰트 위스키로 알려진 글렌피딕 브랜드 앰배서더로 매년 스코틀랜드 글렌피딕 증류소를 방문해 위스키 제조과정을 익힌다. 취미였던 위스키를 업으로 삼은 ‘덕업일치’의 사례로 현재 위스키 관련 클래스와 강의 등을 진행하며 위스키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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