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뜨겁게 달궈져 온 명품 산업이 정체에 빠졌다는 지표가 잇따르고 있다. 올 2분기(4~6월) LVMH(모에헤네시·루이비통), 리치몬트, 구찌의 모기업 케링 등 글로벌 명품 업체들이 주요 시장인 미국, 중국 등지에서 부진하며 일제히 저조한 실적을 거뒀다. 특정 업체만의 현상이 아니다 보니 해외에선 “명품 파티는 끝났다”는 말까지 나온다.
1인당 명품 소비 금액 세계 1위란 조사 결과가 있을 만큼 명품 열풍이 불었던 국내도 상황은 비슷하다. 명품이 주로 유통되는 백화점의 명품 매출 성장이 0%대로 사실상 정체 상태다. 전체 매출 중 명품 비율이 30%대인 백화점 3사(롯데·신세계·현대)는 모두 2분기 영업이익이 20% 이상 줄었다. 업계에선 코로나 봉쇄 시기 억누르고 있던 구매 수요를 과감한 소비로 폭발시키는 이른바 ‘보복 소비’ 현상이 끝났고, 고물가와 희소성 감소 등 이유로 수요가 계속 줄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보복 소비 끝났고 명품 가치도 떨어졌다
최근 2분기(4~6월) 실적을 발표한 주요 명품 업체들은 최대 명품 시장인 미국에서의 부진 탓에 울상이었다. LVMH는 2분기 미국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 떨어졌고, 당일 주가가 4% 빠졌다. 리치몬트는 미주 지역 매출이 4% 떨어졌다고 발표한 날 주가가 10% 급락했다. 버버리는 8%, 케링은 23%씩 미국에서 매출이 감소했다.
주요 업체들은 표면적으론 “보복 소비 현상이 끝나고 이제 매출이 정상화돼가고 있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한편에선 업체들이 매출 상승에 급급해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식으로 제품 수를 크게 늘린 게 패착이란 지적도 나온다. 명품이 ‘희소성’의 가치를 훼손당했다는 것이다. 미 포브스지는 “주요 기업들이 가격을 낮춰 접근성을 높인 상품을 크게 늘리면서 매출을 늘렸지만, 명품 비즈니스의 특성인 희소성과 배치되는 결과를 초래해 명품 제품의 위상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했다. 해외 업체들에 따르면 세계 명품 중 60%는 초부유층이 아니라 명품을 통해 뭔가 얻어내기를 열망하는 상대적 저소득층 고객들이 산다고 한다. 명품 가치가 떨어져 이 60%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계 2위 국가인 중국 내수 침체도 세계 명품 산업에 악재로 꼽힌다. 로이터는 “미국 시장이 주춤한 상태에서 중국 시장이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중국의 경제지표가 그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코로나 엔데믹을 기대한 주요 업체가 각각 중국 시장에 수백만달러를 투자했으나 아직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라져가는 오픈 런… 국내도 명품 부진
명품 시장 정체는 국내에서도 감지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국내 백화점 3사(롯데·신세계·현대)의 해외 유명 브랜드(명품) 매출을 집계한 결과, 지난 6월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0.9%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 4월 4.5%에서 5월 1.9%로 낮아졌고 역성장 직전까지 이르렀다.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던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작년 연간 명품 매출 성장률은 20.5%였다.
매출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는 명품 부진 탓에 백화점 3사는 모두 2분기 저조한 실적을 냈다. 롯데백화점은 영업이익이 36.9% 감소했고, 신세계백화점은 23.9%, 현대백화점도 27.8% 줄어들었다. 실제로 명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 개점 시간을 기다려 줄을 서는 ‘오픈 런’ 현상도 사라져 가고 있다. 샤넬 등 일부 업체는 수요 감소를 이유로 매장 오픈 전 접수를 받는 ‘사전 접수’ 제도를 중단했다.
일부에선 “중국인들의 한국행 단체 관광이 명품 매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 백화점들은 기존 명품보다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고급 브랜드를 ‘준명품’, MZ세대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신명품’으로 분류하고 관련 매장을 늘리는 등 대응에 나섰다. 가격을 낮춰 부담을 줄이고 새로 희소성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