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화장품 브랜드가 3만개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등록된 화장품 책임 판매 업체(완성된 화장품을 유통·판매하는 회사) 수는 2023년 3만1524개로 2019년(1만5707개)보다 1만5000여 개 늘어 5년 만에 2배가 됐다. 올해 11월까지만 4600여 업체가 새로 창업했다. 이 업체들이 보유한 브랜드는 3만개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장품 브랜드가 빠르게 늘어난 배경으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창업 생태계가 꼽힌다.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DM(연구·개발·생산) 방식으로 화장품 제조가 쉬워지면서 생산 설비가 없어도 창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예비 창업자가 가진 아이디어로 세계 정상급 기술을 보유한 제조 업체가 제품을 만들면 올리브영, 무신사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 중소 브랜드가 시장에 진출할 길이 열렸다. 여기에 ‘K뷰티’ 열풍까지 더해지면서 올해 한국 화장품 수출은 역대 최대 실적을 쓸 것으로 기대된다.
◇1년에 5000개 브랜드 창업의 힘은 K뷰티 생태계
업계에 따르면 짧게는 6개월 안에도 화장품 창업이 가능하다. 우선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가 필요한데, 조건만 맞추면 10일 이내로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공계 학위 또는 화장품 조제관리사 자격증이 있거나 화장품 제조 업무에 2년 이상 종사한 경력이 있으면 조건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된다.
가장 중요한 화장품 제조는 제조 전문 업체에 맡기면 된다. 어떤 제품을 만들고 싶은지 화장품 OEM·ODM 업체에 전달하면 기능·제형·비용 등에 맞춰 샘플을 여러 개 제작해준다. OEM·ODM 업체들은 이 같은 경쟁력 덕분에 사상 최대 실적을 쓰고 있다. 글로벌 화장품 ODM 1위인 코스맥스는 업계 최초로 상반기 매출 1조원을 달성한 데 이어 올해 2조원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점유율도 2022년 12위(0.6%)에서 2023년 9위(0.8%)로 올라섰다. 또 다른 ODM 기업 한국콜마 역시 최고 실적을 이어가면서 올해 매출 2조원(화장품 외 제약, 용기 사업 실적 포함) 달성이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샘플 테스트를 몇 번 거치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짧으면 6개월 안에도 제품 출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화장품 창업이 치킨집 창업보다 쉬워졌다”는 말도 나온다.
◇중소 브랜드까지 세계 정상 올랐다
화장품 창업이 쉬워지면서 중소 규모 브랜드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앞세워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까지 진출하고 있다. 국내 중소 화장품 유통 기업 구다이글로벌의 브랜드 ‘조선미녀’는 한국의 전통 한방 원료와 현대 기술을 결합한 ‘모던 한방’이란 콘셉트로 미국·유럽·호주·인도 등 세계 100여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조선미녀’의 대표 화장품들은 국내 ODM 업체의 기술력을 통해 생산되고 있다.
다양한 화장품을 앞세운 중소 브랜드의 성장과 함께 ‘K뷰티’의 경쟁력도 커졌다. 지난해 국내 화장품 수출은 전년 대비 6.4% 증가한 85억달러(약 11조8700억원)로 2021년 92억달러(약 12조8400억원)에 이어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올 1~3분기 누적 수출액은 74억달러(약 10조3000억원)를 달성해 전년 동기(62억달러)보다 19.3% 늘었다. 업계는 올해 화장품 수출이 역대 최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화장품 창업이 쉬워진 만큼 제품 차별화가 어려워졌다는 점은 우려로 꼽힌다. 지난해 화장품 브랜드가 전년 대비 3509개(12.5%) 증가하는 동안 실제로 화장품을 만드는 업체는 겨우 19개(0.4%)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경희대 황재성 유전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피부기반기술개발사업단(NCR)은 보고서를 통해 “책임 판매 업체 증가는 산업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수도 있으나 소규모 업체 난립으로 산업 기반이 취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