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 게 취미입니다. <두 얼굴의 베트남-뜻밖의 기회와 낯선 위험의 비즈니스>라는 책도 썼지요.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공직자가 셋째를 낳아도 처벌받지 않도록 하겠다.” 저출산으로 신음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의아할 이야기입니다. 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처벌이라니요. 그런데 이 정책, 베트남에서는 올해 3월에야 시작된 새로운 변화입니다. 베트남 중앙감찰위원회가 지난 3월 20일부터 셋째 이상 자녀를 둔 공산당 당원도 징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조항을 수정한 거지요.

2003년 만들어 2008년 개정한 베트남의 인구 조례에 따르면 정부에서 정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녀는 1~2명만 두어야 했습니다. 첫째 자녀 이후 둘째 출산을 했는데 쌍둥이가 태어났다거나 재혼한 부부가 각자 데려온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새로 출산한 아이가 태어나 3명이 되는 것처럼 정부가 정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죠.

/하노이=이미지 기자

아이가 셋이면 어떻게 되냐고요? 일반인이야 벌금을 내는 수준에 그치거나 이마저도 면제받기도 해 크게 타격은 없습니다. 하지만 공산당 당원이라면 말이 달라지죠. 무릇 공산당원이란 타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법. 이들이 셋째 자녀를 가지면 징계 절차를 거쳐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보직에서 해임될 수도 있고, 심각한 경우 공산당에서 제명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11월, 셋째를 출산한 교사가 당헌에 따라 징계를 받기도 했고, 일부 공직자들은 셋째 자녀를 입양한 것처럼 등록하는 편법을 쓰기도 하지요.

사회적 분위기가 바뀐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베트남 여성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3년 연속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것입니다. 작년 합계 출산율은 1.91명이었습니다. 통상 2명이 결혼해 출산을 하는 만큼 합계 출산율이 2.1명은 돼야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말합니다. 도시 지역의 합계출산율은 1.67명으로 더 낮습니다. 호찌민 같은 남동부 지역은 1.48명에 불과했고요. 이 때문에 베트남이 2036년부터 고령화 시대에 전격 진입하고, 노동 인구가 감소해 경제 성장 역시 더뎌질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적극적 출산 정책으로 노선 전환

셋째 자녀 출산을 처벌하는 조항을 없애자는 의견은 계속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정부의 인구 계획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칭송받곤 했지요.

함께 사진을 찍는 베트남 가족. 베트남 정부는 공산당원의 셋째 출산을 징계하지 않기로 한 법 개정으로 출산율이 오를거라 기대하고 있다. /뚜오이쩨

“타이빈시의 쩐흥다오 지역은 5년 연속 셋째 자녀를 낳지 않았다”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될 정도였습니다. 326가구, 612명이 거주하고 있는 이 지역에서 가임 부부 중 15%가 자녀를 1명만 낳았고, 모든 가임 부부가 매년 피임을 실천(?)한 덕분에 5년 연속 셋째가 태어난 집이 없는 공로로 성 인민위원회로부터 표창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수년 전만 해도 산아 제한 정책을 권유하던 베트남 정부는 최근 빠르게 태세를 전환하고 있습니다. 셋째 출산 처벌 규정을 폐지한 것에 이어 보건부가 결혼과 출산에 금전적 이익을 주는 인구법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30세 이전에 결혼한 여성과 35세 이전에 두 자녀를 출산한 여성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겠다는 겁니다. 저출산이 심각하다고 여겨지는 지역에 사는 여성이 둘째 자녀를 출산하면 해당 지역 최저임금의 2배인 884만동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자녀가 둘이면 국립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학비도 면제해줍니다. 출산 휴가도 연장할 예정입니다. 적극적인 혼인·출산 인센티브 정책으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읽힙니다.

베트남의 한 대형마트에서 엄마와 장을 보는 아이. /오리온

자녀의 성별을 선택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화합니다. 자녀 출산 전 성별을 알려주는 의료기관과 의료진의 경우 3개월 간 자격을 정지하고, 벌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이를 강화하겠다는 거죠. 사실상 유교 문화권인 베트남의 남아 선호 사상에 따른 낙태를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작년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새로 태어난 아기들의 성별 격차는 남아 112명 대 여아 100명입니다. 2006년부터 시작된 성비 불균형이 계속되면서 2034년에는 베트남의 15~49세 남성이 여성보다 150만명이나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제조업 등의 비중이 높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은 베트남에서 여성 근로자의 수가 부족한 것은 경제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비자발적 독신으로 살며 독거 노인으로 늙어가는 남성이 많아지면서 인근 국가에서의 ‘신부 수입’이 늘어날 거란 우려도 나옵니다. 여성이 가정 경제와 노부모 봉양을 도맡는 전통적 가족 구조를 유지하기도 어렵단 전망입니다. 하지만 여성에게 많은 역할을 지우는 사회 구조가 젊은 여성들의 비혼을 부추긴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지요.

◇셋째 장려 효과 볼까

얼마 전 “한국과 달리 베트남은 아이들을 반겨주는 문화가 있다” “베트남은 미혼 친구들도 편하게 아이를 데리고 오라 해줘서 좋다”는 한국 사람들끼리의 대화를 목격했습니다. ‘노 키즈 존’을 내건 식당이 많아진 한국과 달리 베트남은 아직까지 아이들에게 관대한 편이라는 것이죠.

베트남의 한 레스토랑에 마련된 실외놀이터. 처음 보는 아이들이 뒤엉켜 놀고, 어른들 역시 같이 아이를 돌봐준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데 아직까지 베트남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가 모두 나서서 아이들 함께 키우는 분위기가 남아있다. /호찌민=이미지 기자

실제로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실내 놀이터가 설치된 식당이 많고, 가게 종업원이 애들을 봐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2010년쯤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실내 키즈 카페가 백화점과 쇼핑몰 등에 속속 들어서는 추세입니다. 빈컴몰 같은 대형 쇼핑몰에 들어선 아이스링크도 어린아이들이 주 고객이지요.

어떤 분들은 이렇게 반박할 겁니다. 베트남 부모들은 상대적으로 덜 예민하지 않냐고. 그것도 맞습니다. 어른들이 먹는 음식에서 밥만 떼어 끼니를 먹이거나 담배 연기 가득한 술집에도 애들을 잘 데려오는 걸 보면요. 그래도 ‘예스 키즈 존’이 더 많은 국가가 애 낳아 키우기 좋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공산당원들의 ‘예스, 셋째!’를 외친 베트남 출산 장려 정책이 어떤 효과를 나타낼지 궁금해집니다.

베트남을 관광지로만 생각하면 오산. 당신이 몰랐던 베트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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