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 게 취미입니다. <두 얼굴의 베트남-뜻밖의 기회와 낯선 위험의 비즈니스>라는 책도 썼지요.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잠시만, 아르바이트생 면접 좀 보고 올게.” 베트남 호찌민시의 한 맥줏집을 운영하는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우며 말했습니다. 돌아온 친구는 “아르바이트생이 안 구해져서 걱정”이라고 하더군요. 방금 면접을 본 사람은 지인의 사촌동생이라고 했습니다. 일손이 모자라니 지인까지 동원하는 거죠.
베트남 관련 기사에서 ‘인구 1억명에 평균 나이 30대인 젊은 나라’라는 수식어를 본 한국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을 이야기입니다. 젊은 사람이 넘쳐나는 베트남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없다니요? 지역 별 급지를 나눠 최저임금을 정하는 베트남에서 호찌민시가 포함된 1지역의 최저 시급은 2만3800동. 이 친구의 맥줏집은 시급 2만4000동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려는 젊은 사람이 부족하다는 친구의 푸념은 1시간 넘게 계속됐습니다. 갑자기 그만두겠다며 유니폼만 보내거나 그마저도 꿀꺽해 새 유니폼을 샀어야 한다는 불량 알바생 사례가 끊임없이 나왔지요. ‘이 친구가 직원들을 괴롭히는 성격인가?’ 하는 의심은 맥주 한 모금과 함께 꿀꺽 삼켰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나온 통계를 보고 친구에 대한 의심을 거뒀습니다. 3가지가 없는 베트남 청년들이 많아졌다는 통계였습니다. 알바생 구하기 힘든 사장님들이 화가 난 나머지 비속어(?)라도 쓰는 건가 하고 봤더니 베트남어로 ‘3콤(Ba không)’ 청년들이 많아졌다는 거였습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3무(無)’입니다. 숫자를 좀 더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오늘도 “별일 없이 쉰다”
베트남 재무부가 내놓은 올해 1분기 노동 및 고용 상황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의 15세 이상 경제활동 인구는 5290만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3만700명이 줄어들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경제 활동에 하고 있는 사람의 비율인 노동 참여율은 68.2%로 전분기 대비 0.8%포인트 감소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15~24세의 청년 인구 중 ‘3무’ 청년이 135만명이었습니다. 뭘 안 해서 3무냐고요? 학교를 다니지도, 일을 하지도, 취업 준비를 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베트남 전체 청년 인구의 10.4%로 10명 중 1명꼴이죠. 우리로 치면 그냥 ‘쉬었음’이라 답한 청년들이라 보면 됩니다.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라고도 부르죠. 무직 상태이면서 취업을 위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도 않고, 취업에 대한 의지도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지역별로 보면 농촌 지역이 11.7%로 도시(8.2%)보다 3무 청년 비율이 높았고, 여성이 11.5%로 남성(9.3%)보다 높았습니다.
우리의 설과 같은 뗏(Tết) 명절에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늘어나는 베트남 상황을 고려해도 135만명이나 되는 청년들이 일할 의지 없이 놀고 있다는 사실에 베트남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쩐 안 투안 호찌민시 직업교육협회 부회장은 현지 언론 노동자 신문에 “3무 청년은 당장의 과제일 뿐 아니라 국가 인적 자원의 질에 장기적 영향을 미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청년들의 직업 선택을 도울 전문가 집단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했는데 이런 정책들이 청년들의 구직 욕구를 높이는 데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청년들에 대한 교육 지원, 멘토링 프로그램 같은 구호는 우리에게도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큰 효과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베트남 청년들을 일하게 하기 위한 대안으로 나오는 것 중 하나가 청년들의 IT 업계 취업과 창업 지원입니다. 베트남은 총 6만2039개(2023년 기준)의 IT 기업이 있으며 스타트업(신생 기술 기업)이 3800여 개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베트남 IT 업계에서는 ‘35세의 저주’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젊을수록 더 많은 임금과 승진 기회를 가질 수 있지요. 이들에게 적극적인 창업 지원을 해 모모페이와 VNG 같은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이 만들어지면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계산입니다.
◇요즘 젊은 것들의 문제?
문제는 단순 노동 인력인 청년들입니다. “청년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다”는 한탄도 나옵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청년들도 워라밸(work-life balance의 줄임말·일과 삶의 균형)을 외치며 ‘삶의 질’을 따지다 보니 근무 환경이 좋고, 임금이 높은 일자리만 고르고 있다는 거죠.
사무직 직원들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현재 받는 임금이 내가 하는 일에 비해 부족하다”는 인식이 만연해지면서 월급이나 복지 혜택을 조금 더 준다는 말에 쉽게 직장을 옮깁니다. 업무상 미숙한 점이 발견돼 혼이라도 내면 다음 날 직원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직률이 높지요.
물론, 여전히 업무량 대비 임금이 낮고, 근무 환경이 좋지 않다는 지적도 잇따릅니다. 어찌 됐든 “요즘 젊은 것들은, 쯧쯧” 하며 넘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이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면 수입 없이 놀고 있는 자국 청년들을 내버려 두고, 해외에서 인력을 수입해야 할 테니까요. 베트남에서도 일부 건설 현장 등의 경우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나오고 있습니다. 힘든 일 하겠다는 베트남 사람이 줄어들었으니 인접 국가인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인부를 조달하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지난 2월 ‘쉬었음’으로 분류된 청년은 50만4000명에 달했습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3년 이후 역대 최대치입니다. “젊은 층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말과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말이 동시에 나오지요. 한국은 이미 외국인 노동자 없이 농촌 지역이나 중소기업이 돌아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베트남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국이 보입니다. 과거엔 한국인의 수식어였던 ‘근면성실함’이 베트남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이 된 건 채 30년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표현은 얼마나 베트남의 수식어가 될 수 있을까요. 청년이 일하지 않는 나라, 청년이 일할 수 없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합니다. 희망의 불씨가 꺼지기 전에 이를 되살릴 수 있는 묘약을 찾아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