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과 기능은 뛰어나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가성비 패션’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스파오와 뉴발란스 같은 브랜드를 앞세운 이랜드월드(이랜드)의 패션 부문 영업이익이 이른바 ‘패션 빅5(삼성물산 패션, LF, 한섬,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오롱FnC)’를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금융감독원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랜드월드 패션 부문의 영업이익은 1737억원으로 집계돼 삼성물산(1705억원·이하 패션 부문 기준), LF(658억원), 한섬(635억원), 신세계인터내셔날(153억원), 코오롱인더스트리(164억원)를 모두 앞섰다. F&F 등 지식재산권(IP) 기반 브랜드를 운영하는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사실상 업계 1위다.

유통 업계는 가성비를 앞세운 의류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생활용품점 다이소는 올해 들어 3000원짜리 티셔츠, 5000원짜리 바지 등 신상품을 내놓았다. 편의점 세븐일레븐도 최근 9900원짜리 티셔츠를 PB(자체 브랜드)로 내놓으며 가성비 패션 판매에 뛰어들었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는 스파오, 탑텐 등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브랜드가 인기를 끌자 앱 안에 별도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이랜드월드가 운영하는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 ‘스파오’ AK플라자 홍대점 매장에 제품을 결제하려는 손님들이 긴 줄을 서 있다. 2009년 이랜드가 출시한 스파오는 가성비를 앞세워 최근 3년간 연 20%대의 매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랜드월드

◇빅5 누른 스파오

지난해 이랜드 패션 부문은 국내에서만 매출 1조6839억원을 기록했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2조42억원)에는 못 미쳤지만, 한섬(1조4853억)·LF(1조2053억원)·코오롱FnC(1조2119억) 등 대기업 계열사를 앞섰다. 이랜드의 패션 부문 매출은 5년 연속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랜드는 스파오, 뉴발란스, 미쏘, 후아유 등 브랜드를 운영하는데, 특히 가성비를 앞세운 스파오가 매출 6000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실적을 이끌었다. 스파오는 2009년 일본 SPA 브랜드 유니클로가 한국에 처음 진출할 당시 이랜드가 ‘토종 SPA’로 선보인 브랜드다. 중산층을 겨냥한 고급 브랜드와 차별화해 기본 티셔츠, 청바지, 셔츠, 잠옷 등을 저렴하게 팔며 청소년, 젊은 층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다. 이후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세탁이 쉽다’ ‘땀 흡수가 잘된다’는 등의 소문을 타며 전 세대로 고객층이 확장됐고, ‘6만9900원 패딩’ ‘2만9900원 플리스’ 등을 출시해 상품군을 넓혔다. 2021년 3200억원이었던 스파오 매출은 연간 20%씩 성장해 지난해 6000억원대를 기록했다.

그래픽=김현국

이랜드는 그룹 내 다른 브랜드로까지 가성비 패션을 확장 적용해 인기를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이랜드 유통 부문인 이랜드리테일은 올해 초 자체 SPA 브랜드인 ‘NC베이직’을 론칭했다. 이랜드는 그룹 내 패션 계열사들이 베트남, 미얀마 등 해외 공장에 일감을 공동 수주하는 방식으로 가격대를 낮추는데, 이 방식을 적용한 자체 브랜드다. 의류, 속옷, 운동복, 잡화 등 총 130여 상품을 시중보다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계획으로 1만5900원 백팩, 1만9900원 청바지, 2만9900원 바람막이 등이 출시됐다.

그래픽=김현국

◇다이소·편의점도 뛰어드는 가성비 패션

다이소와 편의점 같은 유통 업체들까지 가성비 패션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다이소는 올여름 시즌에 맞춰 냉감 티셔츠, 메시 속옷 등과 조거 팬츠를 5000원 이하 판매가를 책정해 새로 출시했다. 업계에 따르면 르까프, 스케처스 등 스포츠 브랜드와 협업한 반팔 티셔츠를 3000~5000원에, 양말을 1000~2000원에 선보일 예정이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작년 10월부터 패션·뷰티 상품 개발에 착수해 이달 PB 상품인 ‘세븐셀렉트 수피마 티셔츠’ 2종을 9900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는 저렴한 가격대의 SPA 브랜드 매출이 늘자 앱에 이 브랜드만 따로 모아서 보여주는 카테고리를 마련했다. 에잇세컨즈, 지오다노, 로엠, 유니클로, 자라, H&M 등 주로 합리적인 가격대의 브랜드로 구성했다. SPA 브랜드 카테고리를 별도 신설한 뒤 지난달 SPA 브랜드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106%) 증가했고, 주문 고객 수는 8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