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 게 취미입니다. <두 얼굴의 베트남-뜻밖의 기회와 낯선 위험의 비즈니스>라는 책도 썼지요.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며칠 전부터 베트남 호찌민시 하늘에서는 전투기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도심의 주요 도로가 통제되면서 출퇴근 시간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평소라면 20~30분 만에 닿을 호찌민 1군 시내에서 한인타운이 있는 7군까지 3~4시간이 걸렸단 경험담도 공유됩니다.

베트남 통일절 50주년 행사를 보기 위해 몰린 사람들. 도심 건물들에는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가 내걸렸다. /온라인캡처

불만이 나올 법도 한데 사람들은 왠지 들떠 보입니다. 오는 4월 30일부터 5월 4일 연휴를 앞둔 것도 있지만 올해는 유달리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들떴지요. 이틀 뒤인 4월 30일이 베트남 남부 해방 및 조국 통일 ‘50주년’이기 때문입니다. 반세기 전인 1975년 4월 30일, 현재 호찌민시인 당시 사이공이 해방되며 남북이 하나가 됐습니다. 완전한 통일 국가로서의 베트남이 출범한 날인 거지요. 며칠 전부터 이어진 전투기 소리와 도로 통제는 국가 통일 50주년 기념 행사를 위한 곡예 비행과 퍼레이드 리허설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주말, 호찌민 도심 곳곳은 ‘인파로 뒤덮였다’는 표현 그 자체였습니다. 1909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가장 크고 오래된 건물로 꼽히는 호찌민시 인민위원회 청사(시청사) 벽에는 화려한 미디어 아트가 상영됐습니다. 고층 건물에서 쏘아 올린 축포는 까만 하늘을 별처럼 수놓았고, 절도 있는 군인들의 퍼레이드 행렬을 보기 위한 시민들이 길거리에 자리를 깔았습니다. 응우옌 후에 광장의 카페 아파트먼트 건물 각 호실에는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가 펄럭였습니다. 길거리에는 ‘자랑스러운 조국, 찬란한 미래’ ‘남부 해방- 국가 통일 50년’ 등의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 호찌민의 얼굴도 선명했지요.

베트남 통일절 50주년 행사를 보기 위해 몰린 사람들. 도심 건물들에는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가 내걸렸다. /온라인캡처
베트남 통일절 50주년 행사를 보기 위해 몰린 사람들. 도심 건물들에는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가 내걸렸다. /온라인캡처

화려한 축제만 준비된 게 아닙니다. 올해 기념일에 스케일 큰 선물들이 대거 공개됐습니다. 연인들의 작고 반짝이는 다이아 반지나 포퓰리즘 정권의 선심성 현금 살포가 아닌, 정말로 부피가 어마어마한 선물들입니다.

◇공항, 도로, 전철이 선물로

당장 이번 연휴(4월 30일~5월 4일)가 끝나자마자 베트남 국영 항공사 베트남항공과 저가 항공사 비엣젯항공의 국내선이 호찌민시 제3공항(여객 터미널)에서 운항을 시작합니다. 지난 2022년 8월 착공한 제3공항 공사는 코로나19 기간 공사 진행 상황이 수월하지 않아 완공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올해 통일절 연휴가 끝나자마자 오픈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 19일 개장식에 참석한 팜 민 찐 총리가 “강한 햇볕과 쏟아지는 비를 이겨내고, 휴일과 뗏(설 명절)도 잊은 채 진행돼 완공 예정일을 2개월 앞당기는 성과를 냈다”고 칭찬했지요.

30일 공식 운영을 시작하는 베트남 호찌민시 떤선녓 공항의 제3 여객터미널. /베트남이코노미

앞서 <사이공 모닝>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베트남 최대 도시인 호찌민시의 경우 기존 공항인 떤선녓(Tan Son Nhat) 국제공항의 과밀화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공항 활주로 자리가 없어 호찌민시 상공에서 빙빙 돌며 순번을 기다리거나 인근 공항에 대기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곤 했죠. 이번 제3공항을 조국 통일 50주년에 맞춰 ‘선물’로 준비한 이유입니다. 공항 개장으로 편의성이 대폭 개선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번 제3공항은 연간 200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베트남 최대 규모 국내선 여객 터미널로, 떤선녓공항의 연간 여객 수용 규모는 기존 5000만명에서 7000만명으로 증가할 예정입니다. 선진 공항에서 이용하는 스마트 체크인 시스템 등도 도입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주차장과 레스토랑 같은 시설도 늘어나 국내선 탑승객의 이용 편의가 대폭 향상될 예정입니다. 이 정도면 선물이 맞겠죠?

베트남 호찌민시와 동나이성을 연결하는 년짝대교 공사 현장 전경. /금호건설 제공

공항뿐만이 아닙니다. 국가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이 날을 맞아 베트남 호찌민시와 동나이성을 잇는 년짝대교도 당초 계획보다 4개월이나 앞서 개통됩니다. 올해 8월 완공 예정이었던 이 다리는 “남부 해방 및 조국통일 50주년 기념일에 맞춰 준공을 앞당겨 달라”는 요청에 따라 낮밤은 물론, 휴일도 없이 부지런히 공사했다고 합니다. 그간 진척이 더디던 호찌민시 메트로 1호선 운행을 작년 말 시작한 것도 통일절 50주년을 앞두고 인민들에게 선보이는 선물이었습니다. 전철과 공항에 이어 다리까지, 베트남 정부의 선물 스케일 어마어마하죠?

◇전당대회 앞둔 선물 공세 이어져

대규모 선물 공세가 이어지는 건 올해가 베트남 공산당에게 중요한 해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7월 베트남 서열 1위인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총비서가 서거하면서 또 럼 국가주석이 신임 총비서로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베트남은 공산당 1당 체제가 맞지만 북한처럼 우상화를 하거나 1인 독재 체제는 아닙니다. 개인에 대한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권력 서열 1위인 총비서와 함께 국가주석, 총리, 국회의장 등 ‘4개의 기둥’이라고 불리는 4인이 권력을 나눠 행사합니다. 어찌 됐건 작년 8월 공식 임기를 시작한 또 럼 총비서의 임기는 제14차 공산당 당대회가 열리는 2026년 1월까지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죠.

여론을 통제하는 중국과 달리 베트남은 페이스북과 틱톡 등 SNS가 활발해 일반 국민의 비판적 여론이 쉽게 공유됩니다. 부정부패가 적발되거나 국민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 정치적 파벌 싸움에서 밀리기 쉽지요. 1당 체제이지만 국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또 럼(To Lam) 베트남 국가주석 /연합뉴스

하지만 대내외적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국가를 이끌어 온 응우옌 푸 쫑 총비서의 뒤를 이은 또 럼 총비서는 아직 집권 1년도 채 되지 않았고, 도이머이로 불리는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이끌어왔던 경제 성적도 불안한 상황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 정책으로 관세 리스크가 높아진 탓입니다. 베트남 정치국과 중앙서기처 주최로 지난 16일 열린 전국대회에서 팜 민 찐 총리가 “민간 경제 발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국가적 핵심 인프라 사업에 민간 참여를 확대할 방침”이라 밝힌 것도 이런 대내외적인 불안감 속에 외국인 투자와 민간 투자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거죠.

지난 27일 호찌민시에서 열린 남부 해방 및 조국 통일 50주년 퍼레이드 리허설. /베트남VN

올해 베트남 정부가 준비한 선물은 이게 끝이 아닐 것 같습니다. 63개였던 행정 구역을 34개로 축소해 지방정부 조직과 정치·사회단체 등 국가 전반을 구조조정해 행정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도 시작됐습니다.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피부에 와닿는 선물을 내놓기 위한 노력이지요.

베트남 당대회는 내년 1월,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는 다다음 달인 6월입니다. 선거를 앞두고 우리 국민은 기대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요? 크든 작든 우리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정책들이 선물처럼 쏟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베트남을 관광지로만 생각하면 오산. 당신이 몰랐던 베트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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