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

미국 백신 기업 이노비오(Innovio)의 주가는 최근 6달러(약 7200원)대를 횡보하고 있다. 사실상 신종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이다.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백신 개발 기대감에 이 회사 주가는 33달러(3만7000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지난해 말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임상 시험을 일시 중단하라”는 통보를 한 이후 흔들리더니, 지난달 23일 미국 정부의 재정 지원 중단 발표가 나오자 장중 25% 폭락하기도 했다. 이미 많은 백신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회사 백신이 임상 시험을 통과해도 큰 이득을 남기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투자자들이 많아져서다.

이노비오만의 얘기가 아니다.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 모더나 등과 함께 신종 코로나 사태로 주가가 급등했다가 최근 다시 주가가 급락한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여전히 기대감을 높이면서 주가가 조금씩 반등하는 기업도 있지만, 신종 코로나 백신 레이스의 ‘승자’와 ‘패자’가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주가의 희비가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들 백신주에 물린 돈이 국내에만 최소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 토막 난 ‘백신 패자’의 주가

미국 바이오 회사 백사트(Vaxart)도 이노비오와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 이 회사 백신은 알약 형태로 개발돼 주목받았다. 화이자·모더나 등 다른 회사 백신과 달리 냉장·냉동 보관 시설이 필요 없어 ‘저비용 백신’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올해 초 발표된 1상 임상 결과에서 중화 항체(바이러스에 결합해 활동을 저해하는 항체)가 발견되지 않아 주가가 반 토막 났다. 전문가들은 “백신이 바이러스와 싸우려면 중화 항체 형성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이 회사 주가는 지난해 7월 25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지금은 7~8달러 선에 머무르고 있다.

백신 개발이 끝나지 않았어도 역전의 기회가 남아있는 회사의 주가는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노바백스가 그렇다. 이 회사 백신은 ‘합성항원’ 방식으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가장 안전한 백신으로 꼽힌다. 현재 유럽의약품청(EMA) 심사가 진행 중이며, 상반기 중 결과가 나올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미국 FDA 심사는 다소 시일이 걸리는 만큼 하반기로 전망된다. 아스트라제네카를 대체할 ‘안전한 백신’이라는 기대감이 퍼지며 주가도 최근 다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모더나 주가는 올해 초 경쟁사들이 속속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서 20~30%쯤 하락했다. 그러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존슨앤드존슨 백신의 혈전 부작용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재차 급등했다. 최근 모더나는 주가가 186달러까지 오르면서 사상 최고 기록(189달러)에 근접했다. 화이자의 주가는 지난해 이맘때보다 7%, 화이자와 백신을 공동 개발한 바이오엔테크의 주가는 같은 기간 264% 올랐다. 대형 제약사의 경우 백신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 안팎이라 모더나처럼 주가가 많이 오르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5일(현지 시각) 미국이 코로나 백신에 한해 지식재산권 적용을 면제하는 방안을 찬성한다고 밝히자 이날 모더나 주가는 6.2% 하락해 162달러, 바이오엔테크 주가는 3.5% 하락한 170달러로 마감했다.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이 투자해 유명세를 탔던 미국 바이오기업 소렌토테라퓨틱스는 주가가 40% 넘게 하락했다가 최근 조금씩 상승 추세다. 줄기세포 치료제가 임상을 통과해 신종 코로나 치료제로 쓰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코로나 치료제 ‘램데시비르’ 제조사인 길리어드의 주가는 지난해 여름 84달러까지 갔다가, 현재 60달러대로 29%가량 빠졌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렘데시비르를 코로나 치료에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한 이후 매출이 급감한 탓이다.

◇정부에 코 꿴 국내 백신주

국내에선 정부 백신 정책의 향방에 관련 기업의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초 러시아산 백신 ‘스푸트니크V’ 도입 검토를 승인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러시아 백신 관련주가 급등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러시아 백신을 국내에서 위탁 생산하는 한국코러스에 투자한 이트론과 이화전기가 당일 26% 넘게 올랐고, 러시아 백신 기술이전 계약을 맺은 이수앱지스도 당일 주가가 23% 치솟았다. 이 회사들의 주가는 그러나 지난달 25일 화이자 백신을 위시로 한 정부의 새 백신 공급 계획이 발표되면서 다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난달 중순엔 정부가 “국내 한 제약사가 올해 8월 해외 백신을 위탁 생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며 주식 시장이 들썩였다. 구체적 백신 종류를 공개하지 않아 에스티팜, 녹십자, 프레스티지바이로직스, 한미사이언스 등 다양한 회사의 주가가 올랐다. 종근당바이오도 러시아 백신 위탁 생산 소식에 지난달 28일 주가가 30% 뛰었다. 이 회사는 3월에 코로나 치료제 조건부 허가 신청을 냈다가 탈락해 주가가 8만1000원에서 5만2000원까지 폭락했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백신·치료제 관련 주의 이른바 ‘재료'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의 캐런 앤더슨 연구원은 “신종 코로나 사태가 어떤 식으로 끝날지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라 (백신과 치료제) 승자와 패자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며 “주가가 떨어졌다고 저가 매수에 나서기보다 기술력이 확실한 백신 레이스의 승자를 골라야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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