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안병현

지난달 말 미국 메모리얼데이(현충일) 연휴 기간 미국 주요 도로와 공항, 기차역은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쏟아져 나온 여행객들로 북새통이었다. 미국 교통안전청(TSA)은 이 기간 “항공 이용객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446%나 증가한 711만명에 달했다”고 했고, 전미자동차협회(AAA)는 또 “미국 내 여행객이 작년보다 60% 늘어난 3700만명에 이르렀다”고 추산했다.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공항이 크게 북적일 테니 이용객들은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지 1년 3개월. 백신 접종이 본격화한 이후 첫 여름 휴가철을 맞아 ‘보복 소비’에 이은 ‘보복 여행’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1년 넘게 참았던 ‘여행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되면서, 유럽의 일일 비행 건수는 지난 10일 기준 1만6750건으로 작년 6월(약 6000~7000건) 대비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4월 해외 여행객이 7만130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만1425명보다 2.3배로 늘어난 상황이다. 여행 산업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자 신종 코로나 이후 바뀐 여행 트렌드에 대비하려는 업계 움직임도 분주하다. 덩달아 글로벌 GDP(국내총생산)의 3분의 2에 달하는 서비스업 전반의 회복세가 가파르게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Mint가 여행 산업의 화려한 비상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 트렌드 등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들을 심층 분석했다.

◇분주해진 항공사·여행사

바캉스의 ‘귀환’은 여러 분야에서 체감된다. 우선 꽁꽁 얼어붙었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항공기 운항 편수가 늘고 있다. ‘보복 여행’ 분위기가 가장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지난 3월 이후 200개 넘는 국내 항공 노선의 운행이 재개됐다. 국내 항공사 고위 임원은 “우리나라도 백신 접종률이 최근 크게 올라가면서 기존 노선의 운항 편수를 늘리고, 새로운 노선을 만드는 것에 대해 적극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항공사들은 공항에서의 체크인 및 탑승 과정에서 모바일 앱을 이용하는 등의 최신 IT(정보 기술)를 활용해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감염에 대한 여행객들의 우려를 잠재우고자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도 나온다. 두바이에 본사를 둔 에미레이트항공은 고객이 여행 중 코로나 진단을 받을 경우, 의료비를 최대 15만유로(약 2억원)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하기도 했다. 여행 겸 접종받으러 가는 ‘백신 관광’ 상품도 인기다. 미국행 백신 여행 상품이 대표적이다. 멕시코의 경우 지난 3월 이후 미국으로 백신 관광을 다녀온 사람은 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CNN은 “4월 말 기준 50여 멕시코 여행사에서 미국 백신 관광 상품을 1인당 1000달러(약 110만원) 정도에 판매하고 있다”면서 “싸지 않은 가격에도 예약이 줄을 잇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신 접종률이 2%대에 머물고 있는 태국에서는 한 여행사가 8~10명씩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열흘간 여행하며 1회 접종으로 끝나는 얀센 백신을 맞을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하루 만에 200여명이 예약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 정부도 자체 개발한 코로나 백신인 ‘스푸트니크V’를 접종받을 수 있는 여행 상품을 준비 중이다. 국내에서는 백신 관광에 대한 수요는 크지 않지만, 코로나 백신 접종자에게 자가 격리를 면제하는 괌과 대만, 두바이, 스위스, 하와이 등의 여행 상품이 앞다퉈 출시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 달라진 여행 트렌드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post-corona·신종 코로나 대유행 이후)’ 시대의 여행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벌써 3가지 트렌드 변화가 나타난다.

먼저 1인 혹은 소규모 그룹이 일정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상품을 찾는 수요가 늘었다. 여행 중 감염 확산 우려를 줄이고자 되도록 동행자 수가 적은 상품을 선호하는 데다, 이른바 ‘수요 절벽(갑작스러운 수요 급감)’으로 폐업 위기에 처했던 여행사 입장에서 소규모 그룹이라도 최대한 받아 매출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호텔 예약 사이트 ‘부킹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1인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의 비율은 지난 2019년 전체 여행객의 17%에서 작년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30%로 급증했다. 유럽, 호주 등 인기 여행지를 성수기에 다녀오는 국내 여행 패키지 상품의 경우, 20~30명씩 대규모로 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4~5인 미만의 소규모 그룹으로 움직이는 상품이 많다. 인터파크투어는 지난달 1~2명만 신청해도 출발하는 패키지 상품도 출시했다.

여행 일정은 신종 코로나 확산 상황에 맞춰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도록 바뀌고 있다. 이른바 ‘얼린 항공권’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항공권이 등장해 큰 인기를 끄는 것이 일례다. 해외여행이 가능해지는 시점(양국의 자가 격리 해제)부터 1년간 유효한 왕복 항공권이다. 추석과 설 연휴를 제외한 1년 아무 때나 고정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고, 목적지 변경과 타인 양도도 가능하다.

글로벌 공유 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도 최근 정확한 날짜와 계획 없이 자유롭게 여행을 설계할 수 있도록 ‘유연성(flexibility)’을 대폭 강화한 디지털 전략을 꺼내 들었다. 에어비앤비 브라이언 체스키 CEO(최고경영자)는 “사람들이 특정 기간에 묶이기보다 언제든 여행하고 더 오래 머물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 감염 위험을 낮추려 북적이는 관광지보다 한적한 자연이나 근교를 찾고, 버스·전철 등의 대중교통보다 렌터카 등의 개인 이동 수단을 이용하려는 성향도 강해지고 있다. 부킹닷컴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여행객의 63%가 “혼잡한 관광 명소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답했고, 46%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될까 봐 두렵다”고 답했다.

여행 관련 주요 ETF(상장지수펀드) 수익률

◇'보복 여행' 타고 세계 경제 대반전

여행 산업의 부활은 세계 경제에 큰 호재다. 올해 여행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자, 세계은행은 지난 8일 올해 성장률을 지난 1월(4.1%)보다 1.5%포인트나 높인 5.6%로 제시했다. 세계은행은 “여행 등 서비스 산업이 살아나면서 80년 만에 가장 강력한 ‘불황 후 경제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역설적으로 지난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 경제에 남긴 상처가 그만큼 깊었다는 의미다.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코로나 여파로 글로벌 관광 산업에서만 손실이 최대 3조3000억달러 발생했다. 이는 글로벌 GDP의 3~4%에 달하는 규모다. 제조업 기반이 빈약하면서 관광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개발도상국들의 피해가 커서, 자메이카, 태국, 크로아티아 등의 관광 국가는 지난해 각각 GDP의 11%, 9%, 8%를 잃었다. 또 유럽의 관광 산업 매출은 2019년 2129억달러에서 지난해 1240억달러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세계 여행 및 관광위원회는 관광 산업과 관련된 전 세계 일자리 3억3000만개 중 1억1200만개가 지난해 사라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행은 항공, 숙박은 물론 외식, 레저, 쇼핑 등의 소비까지 동반되기 때문에 여행 산업의 위축은 서비스업 전반에 막대한 타격을 입힌다. 전 세계 산업에서 서비스 부문의 비율은 지난 2018년 기준 61.2%에 달한다. 실제로 지난해 서비스 부문의 극심한 침체로 세계경제는 3.5% 역(逆)성장했다. 글로벌 관광 산업의 손실 규모 추정치와 비슷하다. 그만큼 여행 산업의 부활은 지난해 역성장으로 인한 기저 효과까지 더해지며 세계 경제의 강한 반등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경기 급반등으로 인한 리스크도

여행의 일상화가 가까워졌다는 소식은 항공, 여행, 면세점, 카지노 등 여행 관련주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호텔, 리조트, 크루즈 등에 투자하는 ‘어드바이저 셰어즈 호텔(Advisor Shares Hotel) ETF(상장지수펀드)’는 최근 한 달 새 6%가량 상승했고, 전 세계 여행 기술 관련 기업들에 투자하는 ‘ETFMG 트래블테크(Travel Tech) ETF’는 상승률이 10%에 달했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 상승률(4%)보다 2배 이상 높다. 대표적인 국내 여행 관련 ETF인 ‘TIGER 여행 레저’도 지난 한 달간 14%가량 올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행 산업의 급격한 회복이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원자재와 생활 물가의 급등에 더불어, 서비스 부문 물가까지 회복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경기 과열을 막으려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과 기준 금리 인상에 나서고,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이를 따라가면서 글로벌 금융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여행을 통해 서비스 소비에 지출하는 돈이 늘어나면서 재화(goods)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 세계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 지난해 팬데믹 이후 실업수당 등에 힘입어 늘어난 가처분 소득을 주로 재화 소비에 써왔다. 하지만 앞으로 소득 증가율이 둔화하는 가운데 서비스 소비가 폭증하면 재화 소비가 급하게 꺾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을 최대 혹은 주요 수출국으로 삼은 중국과 베트남,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충격받을 수 있다. 하이투자증권 조익재 연구원은 “과거에도 선진국 재화 소비의 둔화는 항상 한국 수출 증가율을 주춤하게 만들었다”며 “선진국의 소비 부진을 중국이 받쳐줘야 하는데, 중국이 현재 통화 ‘긴축’ 모드에 있어서 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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