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부터 주택용 도시가스 8.4% 인상, 서울 택시비 밤 10시부터 할증 검토, 국제선 유류 할증료 25만6100원으로 역대 최고, 롯데월드 성인 자유이용권 6만2000원으로 인상, BBQ 치킨값 2000원 인상, CGV 영화관람료 1000~5000원 인상, 쿠팡 멤버십 기존가입자 4990원으로 인상…
내린다는 뉴스는 없고 온통 오른다는 뉴스 뿐이다. 가뜩이나 돈 쓸 일이 많은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가계의 주름살은 더 깊어지고 있다. 5월은 해외주식 양도세, 종합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내야 하고, 어버이날·어린이날 등 각종 기념일이 몰려 있어 지출이 커지고, 결혼식 같은 행사도 많은 시기다.
40대 주부 이모씨는 “평상시랑 똑같이 생활했는데, 이달 카드값 결제일에 통장 잔액이 부족하다는 휴대폰 알림을 받고 깜짝 놀랐다”면서 “돈 좀 굴려보겠다고 매수한 삼성전자 주가는 지금 500만원이나 손해났고, 대출 이자는 계속 오르기만 하니 5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 상승기에는 ‘아끼똥(아끼면 똥된다)’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씀씀이에 거침이 없었지만, 금리 인상 속에 물가마저 급등하면서 뜨겁게 타올랐던 축제 분위기는 빠르게 식고 있다.
서울에 사는 주부 최모씨는 “10만원으로 장 본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돌아서면 또 10만원 어치 장을 봐야 하는 ‘돌장돌장’의 연속”이라며 “우리나라만 물가가 오르면 일시적일 것이라고 안심할 텐데, 지금은 전세계가 다 같이 물가가 오르고 있어서 옛날 오일파동 같은 일이 터지는 게 아닐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40대 회사원 황모씨는 “마트에 가면 평소대로 똑같이 카트에 담는데, 계산대에서 결제 금액을 보면 손이 떨린다”면서 “집값이 많이 뛰었으니 물가도 덩달아 뛸 수 밖에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내 월급은 그렇게 오르지 않으니 큰일”이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지속됐던 저금리와 저물가에 소비 구조를 맞춰 놓았던 가계는 고금리, 고물가 흐름에 맞춰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아끼기 보다는, 혹시 나도 모르게 새는 구멍은 없는지, 지출 거품이 끼어 있는 것은 아닌지, 가계의 소비 생활을 되돌아보고 있다.
지난 28일 조선일보 경제부가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의뢰해 20~50대 남녀 12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도 이런 트렌드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설문에 따르면, 가계의 구조조정 1순위는 외식비(배달)였다. 응답자 10명 중 4명(36.3%)꼴로 배달을 포함한 외식비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또 술이나 담배, 여행(휴가), 통신비, 미용 관리, 넷플릭스 등 OTT 이용료 등을 줄이겠다는 응답 비율도 13%를 넘었다. 반면 반려동물 케어 비용이나 자녀 학원비 등을 줄이겠다는 비용은 6~7% 정도에 그쳤다.
코로나 걱정은 되지만 비싼 기름값이 부담되어서 차량 운행을 가급적 줄이겠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이번 설문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차를 운행하고 있다는 응답자 비중은 27%에 불과했다.
반면 응답자의 36.4%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 교통을 적극 이용하고 있으며, 불필요한 차량은 처분할 계획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도 전체의 15%에 달했다. 자전거나 도보 출퇴근을 고민하고 있다는 응답자 비중 역시 전체의 21%로 꽤 높았다.
40대 회사원인 김모씨는 “요즘 출퇴근 시점의 여의도 급행열차는 코로나 이전보다 더 심한 지옥열차”라면서 “재택 근무가 다 풀려서인가 생각도 들지만 그보다는 기름값이 비싸서 대중교통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여의도 대형 증권사 A부장은 “기름값이 너무 올라서 수도권에 사는 직원들은 대부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한다”면서 “예전에 유행했던 ‘절약은 BMW(버스+메트로+워킹)’ 시대가 다시 오는 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