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숲 2024년 12월 벤처투자 결산. /마크앤컴퍼니 제공

이 기사는 2025년 1월 6일 11시 21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작년 12월 비상계엄 사태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극대화한 상황에서도 국내 신규 벤처투자 규모가 8000억원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추진되던 시기(2499억원)와 비교해 3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조선비즈가 마크앤컴퍼니와 공동으로 지난해 12월 신규 벤처 투자 규모를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총 143개 기업이 총 8327억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전월(2024년 11월·5530억원)과 비교해 3000억원 가까이 증가하면서 투자 심리 개선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형 하우스의 한 관계자는 “작년 바닥을 찍고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신규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규모가 큰 하나의 펀드를 만들어 운용하는 원 펀드 전략 하우스가 늘면서 드라이파우더 소진을 위해서라도 투자 건수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앤컴퍼니는 스타트업 성장 분석 플랫폼 ‘혁신의숲’을 운영하는 국내 벤처캐피털(VC)이다. 이번 신규 투자 금액 집계는 시드(Seed) 라운드부터 기업공개(IPO) 이전 단계인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IPO)까지 1개월 동안의 신규 투자액을 집계했다. 기관 간 구주 거래는 통계에서 제외했다.

앞서 벤처 업계에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25%로 전격 인하하면서 하반기 벤처투자 시장이 회복할 것이란 기대가 번졌다. VC 업계 관계자는 “금리 인하에 따라 풍부한 유동성이 투자 시장으로 유입되는 한편, 벤처 투자 호황기 시절 높아진 몸값이 서서히 낮아짐에 따라 하반기부터 반등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경기 침체와 고금리로 인한 벤처 투자 침체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월에서 11월까지 신규 투자 금액은 5조6411억원으로 전년 동기(4조7693억원) 대비 18.3% 증가했다. 2023년 전체 신규 투자 금액(5조3977억원)도 추월했다. 2021년 7조6802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2년과 2023년 하락세를 겪은 벤처투자 시장이 3년 만에 반등에 성공한 상황이다.

작년 12월에는 헬스케어·바이오(1631억원), 제조·하드웨어(1463억원), 패션(1250억원), 교육(1159억원), 통신·보안·데이터(727억원) 등 다양한 분야에 온기가 퍼졌다. 투자 건수로는 AI·딥테크·블록체인(26개), 제조·하드웨어 (24개), 헬스케어·바이오(21개)로 집계됐다.

특히 인공지능(AI) 기반 영어 학습 설루션 ‘스픽(Speak)’을 운영하는 스픽이지랩스코리아와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 운영사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이 각각 1000억원 이상의 신규 자금을 모집하면서 투자 시장을 주도했다.

스픽이지랩스코리아는 시리즈C 라운드에서 1조4000억원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기록하며 1094억원에 달하는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글로벌 벤처캐피털 엑셀(Accel)이 주도한 이번 투자에는 오픈AI 스타트업 펀드(OpenAI Startup Fund), 코슬라 벤처스(Khosla Ventures),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 등이 참여했다. 에이블리는 중국 알리바바그룹으로부터 1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글로벌 디지털 의상 설루션 기업 클로버추얼패션(500억원)과 웹툰 ‘외모지상주의’를 그린 박태준 작가의 웹툰 스튜디오 더그림엔터테인먼트(215억원) 등 패션·문화 섹터도 관심을 받았다. AI반도체 설계 팹리스 스타트업 하이퍼엑셀, 자율주행 소부장 기업 에이치제이웨이브는 각각 450억원의 자금을 모았다.

다만 모험 자본의 취지와 다르게 안정적인 후기 투자에 집중하는 경향은 이어지고 있다. 작년 업력별 신규 투자 현황에 따르면 전체 투자 라운드에서 후기기업(7년 초과) 투자는 45.2%에 달했다. 이는 2023년의 37.8%에 비해 7.4%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반면 초기기업 투자 비중은 19.7% 수준으로, 최근 10년 동안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대형 VC의 한 관계자는 “정책 자금을 받아도 민간 자금과의 매칭이 필요한데, 민간 기관투자자는 안정적인 회수 트랙레코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처럼 펀드레이징 환경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초기기업에 투자하기보다 빠르게 엑시트가 가능한 후기 라운드에 참여하는 VC가 늘어나고 있다”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하면서 신규 투자가 제로(0)인 VC도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