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노후 자금 마련을 위해 고객이 증권사에 퇴직연금 운용을 맡겼으나 운용 수익률이 수수료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물론 고객의 무관심 영향이 크다. 수익률이 너무 낮으면 투자 상품을 바꾸는 등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대다수 고객이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이런 경우엔 증권사가 수수료를 수취하면 안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관리를 해주지 않을 거라면 수수료 수취 명분이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도입된 것이 디폴트옵션이지만, 디폴트옵션 또한 초저위험 상품에 몰려 있어 수익률 개선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국회에선 퇴직연금 수익률과 수수료를 연동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7일 금융감독원이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체 퇴직연금 사업자(금융사)의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 수수료율은 확정기여형(DC)이 0.72%, 개인형 퇴직연금(개인형 IRP)이 0.73%였다. DC형과 개인형 IRP는 모두 근로자가 운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개인형 IRP는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개별 가입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DC형과 차이가 있다. 수수료율이 1%도 안 되는 수치라 적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운용 수익률은 대체로 이보다 낮았다. 증권사 13곳의 DC형 3년 평균 수익률은 0.47%에 불과했다.

개별로 보면 유안타증권 고객의 DC형 3년(2021~2023년) 수익률은 0.44%로, 연 수수료 0.83%보다 적었다. 신영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역시 고객 수익률이 각각 0.77%, 0.07%로 연 수수료인 0.86%와 0.55%보다 낮았다.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2~3%인 점을 고려하면 실질 자산은 오히려 깎인 것이다.

운용 수익률이 아예 마이너스라 명목 자산마저 감소한 경우도 있었다. DC형 최근 3년 기준 현대차증권 고객의 수익률은 마이너스(-) 0.37%, 아이엠증권(옛 하이투자증권) 고객은 -0.24%, KB증권 고객은 -0.06%였다. 이들 증권사에 돈을 맡긴 고객은 금융사에 수수료만 내고 원금을 잃었다는 의미다.

퇴직연금에 관심이 많은 고객이 가입하는 개인형 IRP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개인형 IRP 수수료율이 공시된 증권사 13곳 중 8곳은 3년 수수료율보다 수익률이 낮았다.

증권사별로 보면 하나증권 고객의 3년 평균 개인형 IRP 수익률이 -0.18%로, 증권사 중 가장 낮았다. 한국투자증권(0.04%), KB증권(0.21%), 한화투자증권(0.22%)이 뒤를 이었다. 그나마 가장 높은 삼성증권의 3년 개인형 IRP 평균 수익률은 1.49%다. 다만 이 역시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투자 수익률은 마이너스다.

박민규 의원은 “단순히 적립자산을 기준으로 적용되는 수수료를, 운용 성과와 서비스 수준에 연동되도록 개편하고 상한을 두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고객의 퇴직연금 수익률을 개선하고자 도입된 제도가 있다. 바로 디폴트옵션이다. 디폴트옵션이란 고객이 운용할 특정 금융상품을 정하지 않았을 경우, 가입할 때 위험의 정도만 선택하면 증권사 등 금융사가 퇴직연금을 맞춰서 운용하는 제도다.

2023년 7월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수익률은 물가상승률에 근접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최근 1년 수익률은 평균 4% 수준에 그친다. 대부분이 초저위험 상품에 집중되면서다.

디폴트옵션 적립 금액 32조9095억원 중 초저위험이 89%(29조3478억원)다. 원금을 1원이라도 잃지 않으려다 수익률을 놓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디폴트옵션 제도의 개선을 고려 중이다. 사업의 취지는 고객이 맡기면 금융사가 경제 상황에 맞춰서 운용해 주는 것인데, 현재는 위험도별로 운용되는 상품과 비중이 고정돼 있어 기계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실정이라서다. 가령 미래에셋증권의 ‘중위험 포트폴리오1’은 미래에셋전략배분TDF2045 75%와 부산은행 정기예금 25%로 구성된다. 이 비율은 가입자가 변경할 수 없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디폴트옵션은 사업자가 알아서 운용하는 게 상식적인데, 현재 국내에선 구조가 그렇지 않다”며 “최종적으로 고객이 투자 상품을 선택해야 해 개선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