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였던 시절부터, 후배들이 소녀인 시절까지, SM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SM의 모든 음악이 여러분 긴 인생의 바다에 흐르고 또 흐르길 바랍니다.”

지난 12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SM엔터테인먼트 창립 30주년 기념 공연 ‘SMTOWN LIVE 2025′. 국내 첫 여자 아이돌 그룹 S.E.S.의 리드보컬 바다가 무대에 올라 말했습니다. A4 용지 빼곡히 채운 그녀의 편지에 SM 선후배와 팬들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바다는 30여년 전 동료 유진, 슈와 불렀던 ‘드림 컴 트루’를 이번에는 후배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 윈터와 함께 했습니다. SM만이 가능한 무대였습니다.

국내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국내 첫 아이돌그룹 ‘H.O.T.’와 ‘S.E.S.’부터 K팝의 문을 연 ‘보아’와 ‘동방신기’, 국민 아이돌 시대를 연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를 거쳐 최근 ‘에스파’와 ‘라이즈’까지 SM의 역사는 곧 K팝의 역사였습니다.

엔터업은 불확실성이 강한 사업입니다. 투자한 시점부터 현금 흐름을 창출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 지, 매출을 낼 수는 있을지 불확실합니다. 인공지능(AI) 기업 팔란티어 창업자 피터 틸은 책 ‘제로 투 원’에서 “기술 기업이 현금 흐름을 창출해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10~15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엔터 기업은 3년 이내에 수익을 창출할 수 없을 경우 존속이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투자해도 수익 창출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기술 기업처럼 실패한 기술을 다른 제품에 접목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만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높은 위험, 많은 수익)’ 사업입니다.

그러나 SM은 지난 30년 동안 딱히 망한 가수가 없습니다. 인기 정도와 팬덤 규모, 지속성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가수들을 성공 궤도에 올려놨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시가총액 2조원에 달하는 기업이 됐습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10년을 버티는 기업은 약 36%, 20 주년을 맞이하는 기업은 약 21%, 26년 이상 된 기업은 겨우 12%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SM은 30년 동안 K팝 업계에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돈이 되는 여기 힙해 서른 아홉 번째 이야기입니다.

<1>직원도 팬도 ‘로열티’보다 강한 ‘패밀리십’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능력 있는 직원, 지속시키는 것은 충성심(로열티) 강한 직원이라면, 회사를 최고로 만드는 것은 ‘패밀리십(공동체 의식)’이 강한 직원입니다.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며, 가족처럼 목표나 삶을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SM직원과 팬들은 자신들을 ‘핑크 블러드’라고 부릅니다. 분홍색 피가 흐르는 하나의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월급을 받는 직원도 패밀리십이 생기기 힘들지만, 돈을 주고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자신과 기업을 일치 시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그럴려면 나와 기업을 일치 시켰을 때 내가 돋보이도록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높고, 쉽게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흔히 ‘왕조’를 누리는 기업만이 고객으로부터 이런 ‘패밀리십’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보통신(IT) 기업에서는 애플, 게임업계에서는 ‘티원(T1)’ 등입니다.

이런 패밀리십은 고객들이 갖게 하는 것도 힘들지만, 유지하는 것은 더욱 힘듭니다. 고객들이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시위 트럭과 근조 화환 등으로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SM 경영진과 직원들은 이런 고객(팬)들의 의사 표현에 빠르게 대처하고 능숙하게 피드백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결국 엔터 기업을 존속 시키는 것은 ‘핵심(코어) 고객’인 ‘팬’이기 때문입니다.

<2>신인 성공률 높여

SMTR25 /SM엔터테인먼트

이런 기업의 ‘패밀리십’은 불확실한 신인 성공률을 높여줍니다. 신인들이 가장 힘든 것은 인지도를 얻을 때까지 걸리는 예측 불가능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런 패밀리십이 강한 기업에서 나오는 신인은 그 자체만으로도 주목을 받습니다. 아이폰 14를 산 사람이라면, 아이폰 16이 출시될 때 타브랜드보다 더욱 관심을 갖고 구매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SM은 이런 장점을 이번 30주년 콘서트에서 적극 활용했습니다. 다음 달 데뷔를 앞둔 신인 걸그룹 ‘하츠투하츠’ 영상을 공개하고, 아직 데뷔도 확정되지 않은 남자 연습생 25명을 ‘SMTR 25′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세운 것입니다. 이들이 샤이니의 ‘루시퍼’와 엑소의 ‘으르렁’ 등을 부르자 팬들은 이들의 영상을 촬영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바빴습니다. 팬들이 대신 해주는 마케팅입니다.

<3>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직원들의 충성심

위기를 겪지 않는 기업은 없습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다면 곪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상처가 곪아간다면 과감히 메스를 대고 수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을 진행하고 버텨 상처를 아물게 만드는 것도 충성심 강한 직원들의 역할입니다. 이 때의 충성심은 창업자나 경영진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기업이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를 향해야 합니다. 현재 SM의 공동 가치, 슬로건은 ‘THE CULTURE, THE FUTURE(문화와 미래)’ 입니다.

2년 전 SM의 창업자인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가 20여년간 영업이익의 (연간 최대) 3분의 1을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으로 몰아주다 주주와 경영진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이 창업자가 이에 반발해 전체 지분을 경쟁사인 하이브에 넘기면서 발생했던 경영권 분쟁 당시에도 SM직원들은 이탈하지 않았습니다. SM은 ‘엔터업계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스카우트 제의가 많이 들어오는 기업입니다. 그러나 직원들은 “이수만은 SM과 핑크 블러드를 버리고 도망쳤지만, 우리는 서울숲에 남아 SM과 핑크 블러드를 지킬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기업 전문가 마이클 슈미트는 경제지 인베스토피아에 “회사에 경험이 많고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들이 있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며 “경험이 풍부한 관리자는 회사를 시장 주기를 통해 이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세대 관리자에게 멘토링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HOT와 NCT 드림 /SM엔터테인먼트

30여년 전 초록색 장갑을 끼고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곡 ‘캔디’)”를 부르던 그룹 ‘H.O.T’의 강타는 안칠현 이사님이 돼 동료였던 토니, 후배인 NCT와 함께 30주년 콘서트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 시절 일본 J팝 시장을 개척하던 10대 소녀 보아는 권보아 이사님이 돼 후배 라이즈와 함께 춤을 선보였습니다. 국내 최초 도쿄돔 무대에 오르며 K팝의 위상을 높인 동방신기는 30주년 콘서트의 오프닝을 장식했습니다. 이들이 연습생 생활을 할 때부터 함께한 직원들은 공연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무대 뒤에서 작은 실수라도 발생할까봐 마음을 졸였습니다. 이것이 레거시 있는 기업의 특징일까요? 30년 뒤, SM의 60주년 무대를 장식할 가수들의 모습이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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