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비용 고기능 ‘딥시크 R1′을 출시하자 엔비디아 주가가 폭락했지만, 오히려 저가 매수 기회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27일 엔비디아 주가는 전장 대비 16.97% 하락했지만, 시간 외 거래에서 1.53% 상승했기 때문이다. 한국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엔비디아의 보관액은 126억달러로 테슬라(243억달러)에 이어 서학개미(해외 주식 개인 투자자)들이 사랑하는 주식 2위다.
주요 고객사인 엔비디아가 직격탄을 맞자, 국내 반도체 업계도 딥시크발 충격에 따른 영향을 따져보고 있다. 향후 AI 분야의 판도 변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는 AI 생태계의 저변이 확대될 수 있어 오히려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엔비디아에 HBM(고대역폭 메모리)’칩을 납품해 주가가 함께 움직이는 SK하이닉스 주가는 설 연휴가 끝나고 오는 31일 장을 여는 만큼 대응에 신중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경우 저성능칩이 주목 받을 경우 오히려 기회라는 분석도 있다.
◇엔비디아 저가 매수론
지난 27일 엔비디아 주가는 하루 만에 846조원 증발했고 시총 순위는 3위로 주저앉았다. 미국 증시 역사상 최대치다.
그동안 AI를 위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을 독점한 엔비디아는 고성능·고효율을 강조하며 고가 제품을 판매해 왔다. 하지만 딥시크의 AI 모델 훈련에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성능을 낮춰 출시한 H800 칩이 쓰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엔비디아의 고성능·고비용 전략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과연 과거처럼 큰 마진율을 남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AI도 엔비디아의 칩으로 구축된 생태계에서 탄생한 만큼 지금이 저가 매수 기회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조슈아 부칼터 TD 코웬 애널리스트는 “딥시크 모멘트는 시장이 걱정하는 만큼 부정적이지 않다”면서 “엔비디아는 여전히 AI 칩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최근의 주가 하락세로 장기적인 성장 스토리가 훼손되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낸시 텡글러 라퍼 텡글러 인베스트먼츠 최고투자책임자(CIO)도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여전히 막대한 자금력과 인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력이 단기간에 뒤집히진 않을 것”이라며 “딥시크에 대응하기 위해 메타 플랫폼즈가 이미 태스크 포스팀을 구성했다. 딥시크의 주장이 사실인지 곧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미국 기업들이 얼마나 빨리 적응하는지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 영향은?...삼성전자는 좋을 수도!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 등장에 동학개미(한국 주식 개인 투자자)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설 연휴 기간 국장은 열리지 않지만, 오는 31일 증시가 열리면 그동안 엔비디아에 HBM를 독점 공급하다시피 한 SK하이닉스는 물론 소부장 업체인 한미반도체도 충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HBM 5세대인 HBM3E 납품을 위해 품질테스트를 진행 중인 삼성전자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민감한 메모리 산업의 특성상 단기적으로 가격 변동폭이 커질 수도 있다”면서도 “결국 딥시크도 엔비디아 칩으로 AI 모델을 개발한 만큼 엔비디아의 시장 우위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AI 생태계의 저변이 넓어질 수 있어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칩셋이 비싸고 구하기 어려워 AI 시장의 진입 장벽이 높았지만 딥시크가 촉발하는 저비용 구조의 AI 모델이 확대되면 AI 생태계가 더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AI 반도체 열풍에서 소외됐던 삼성전자에게는 오히려 호재라는 분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와 기술 격차를 줄일 시간을 벌었을뿐더러, 엔비디아 H800과 같은 저성능 칩에 공급되는 HBM3에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딥시크가 보여준 혁신은 AI 개발이 대규모 칩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마크 안드레센은 “더 저렴한 대안이 이미 나와 있는데 투자자들이 미국 거대 기술 기업들의 엄청난 지출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AI 리더십을 더 확고히 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향후 첨단산업에 대한 대중국 규제를 강화하면서 미중 갈등이 한층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중국이 이에 대응해 자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등 반도체 자급자족에 한층 속도를 낼 경우 국내 기업의 반도체 수출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