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공모가는 지켜줄 거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10% 손해 보고 팔아야 할 상황이라서 답답하네요.” “시장 분위기가 너무 냉랭한데, 혹시 다른 공모주처럼 반토막 나면 어쩌죠?”

5일 올해 공모주 시장 첫 대어인 LG씨엔에스가 공모가 대비 9.85% 하락한 5만5800원에 마감하자, 공모주 참여자들 사이에서 실망과 불안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LG씨엔에스는 LG그룹의 정보기술(IT)서비스 기업이다. 지난 2022년 LG에너지솔루션(약 70조원) 후 3년래 최대 기업공개(IPO)로 주목을 받았다.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도 지난 달 공모주 청약 증거금으로 21조원이 넘게 모였다.

하지만 상장 첫 날 공모가(6만1900원) 방어에 실패하고 5조원대 시총에서 마감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이동성 퀸즈가드자산운용 대표는 “올해 공모주 투자의 바로미터가 될 중요한 종목이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다”면서 “최근 상장한 종목들이 공모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부진한 흐름을 보이자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손절 매물을 대거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기관 순매도 1위...개인만 나홀로 매수

LG씨엔에스의 5일 상장 첫 날 주가 하락은 기관이 주도했다. 기관 투자자는 하루에만 1555억원 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날 기관 순매도 종목 1위로, 2위(한화오션 236억원)보다 훨씬 많았다. 외국인은 292억원 어치 팔았다. 개인만 1856억원 어치 나홀로 순매수했다.

LG씨엔에스는 기관 투자자가 주식 물량을 일정 기간 보유하겠다고 약속하는 의무보유확약 비율이 높지 않았다. 결국 상장일 유통 가능 금액이 1조6000억원으로 컸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주가 하락으로 코스피200 등 주요 지수 편입 시기가 늦어질 것이란 예상은 하락세를 더욱 부채질했다. 한국거래소가 최근 코스피200 지수의 대형주 조기 편입 요건을 강화한 영향이다. 지수에 편입되어야 이를 추종하는 패시브 펀드 자금이 유입되면서 주가가 상승하는데, 조기 편입에 실패한다면 단기적인 주가 변동성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배철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LG씨엔에스가 코스피200 지수에 조기 편입되려면 공모가 대비 253% 이상 상승한 주가 수익률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정기 변경 특례 편입도 상장 이후 6개월이 지나야 하므로 6월 정기변경이 아닌 12월에나 가능하다”고 말했다. 배 연구원은 이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스탠다드 지수는 조기 편입하려면 시가총액이 8조원은 넘어야 하는 등 요건이 엄격하다”고 말했다.

LG씨엔에스는 LG그룹을 캡티브(captive·계열사 내부)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어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가지고 있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배당성향 40% 넘길 것” 親주주 정책

5일 LG씨엔에스가 호된 상장 신고식을 치르자, 서울 마곡 본사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사주조합은 LG씨엔에스 주식을 3.4% 보유하고 있다.

LG씨엔에스 직원 A씨는 “기대를 많이 했던 만큼 실망도 크다”면서 “하지만 회사 실적은 계속 좋아지고 있으니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LG씨엔에스는 지난 5년간 매출은 연평균 12%, 영업이익은 연평균 20%씩 성장하며 안정적인 실적을 이어오고 있다.

오동환 삼성증권 연구원은 “LG씨엔에스는 LG그룹을 캡티브(계열사 내부) 고객으로 확보해 안정적 매출 기반을 갖고 있는 한편, 논캡티브(계열사 외부) 매출도 2023년 기준 2조3000억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라며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부문이 최근 3년간 연평균 24% 성장하며 전체 매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이익을 바탕으로 한 주주 환원 정책도 투자 포인트로 꼽힌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국내 그룹사 IT 서비스 기업들의 평균 배당성향(순이익 중 배당금 지급 비율)은 25% 수준인 데 반해 LG씨엔에스는 4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2023년 주당 1520원 배당).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LG씨엔에스는 배당성향을 4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 “공모주 대마불패 신화 깨졌다”

“공모주 시장에서 믿어왔던 대마불패 신화가 무참히 깨져버렸네요. 당분간 공모주 투자는 쉬어야겠어요.”

새해 공모주 투자 성과가 신통치 않자, 개인 투자자들은 전략을 보수적으로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올해 상장한 8개 새내기 기업 중 아스테라시스(의료기기업체)를 제외한 7개 종목이 상장 첫날부터 공모가 대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4년 차 공모주 투자자인 이모 씨는 “덩치가 큰 대형주는 상장 초기에 주가가 오르는 게 일반적이어서 LG씨엔에스도 분위기를 반전시킬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랐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5년까지 시가총액 1조 원 이상인 대형 공모주는 상장 첫 날 평균 40%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다른 개인 투자자 황모씨는 “작년에는 한 주라도 더 받기 위해 마이너스통장도 쓰면서 ‘영끌 청약’을 해서 재미도 많이 봤는데, 올해 고전하고 있다”면서 “금융당국이 상장 제도를 개편하고 나면 다시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기관투자자의 의무보유확약 확대, 수요예측 참여기관 자격 강화 등 단기 차익 목적의 공모 시장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이다.

이동성 대표는 “올해 IPO(기업공개) 시장의 부진은 국내 주식시장 기반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며 “국내 증시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비교 기업들의 주가마저 빠지다 보니 밸류에이션(가치)이 매력적인 기업이라도 오래 보유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시 전망이 밝다면(유통시장 활성화) 기관들이 빠르게 처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 K씨는 “실체도 없는 스팩(SPAC)이 상장 첫날 3~4배씩 급등하고, 적자 투성이 기업이 미래의 추정 이익을 앞당겨 반영해 공모가를 지나치게 높이는 등 그동안 한국 공모 시장이 정상적이지 않았다”면서 “LG씨엔에스 주가 하락이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계기가 되어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상범 리코자산운용 대표는 “청약만 하면 치킨값은 번다는 생각을 버리고, 꼼꼼한 가치 평가(narrative and numbers)를 바탕으로 옥석을 가려 신중하게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