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ETF(상장지수펀드) 시장 규모가 이달 들어 180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국내 상위 자산운용사 간 ETF 수수료 인하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
시장점유율 2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이 6일 미국 지수 추종 ETF 2종의 총보수(운용 수수료와 기타 운영 비용)를 기존 연 0.07%에서 10분의 1 수준이자 업계 최저인 연 0.0068%로 내리면서다. 투자자들은 줄어든 수수료에 당장은 투자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과도한 출혈경쟁으로 결국 운용사들의 경영 건전성을 해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삼성·미래에셋, 수수료 인하 경쟁
지난 4일 기준 국내 ETF 시장의 순자산 총액은 182조104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11일 순자산 총액이 170조원을 돌파한 뒤, 두 달여 만에 10조원쯤 늘었다. ETF는 펀드처럼 분산투자를 할 수 있으면서 주식처럼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장점을 내세우면서 투자자들 사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운용사들이 내놓은 ETF들의 내용이 비슷하기 때문에 고객 끌어들이기 경쟁은 주로 ETF 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래에셋운용이 TIGER 미국S&P5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의 총보수를 0.0068%로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 지수 추종 ETF의 최저 보수는 삼성자산운용의 연 0.0099%였다.
미래에셋운용 관계자는 “미국 주식 투자 저변 확대와 투자자 성원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미래에셋운용이 업계 1위인 삼성운용을 따라잡기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4일 기준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운용의 ETF 시장 점유율은 각각 37.9%와 35.5%로 격차는 2.4%포인트에 불과하다.
두 운용사는 수년 전부터 ETF 수수료 인하 경쟁을 하고 있다. 2022년 4월 삼성운용이 KODEX KOFR금리액티브(합성)의 총보수를 0.05%로 출시하자, 미래에셋운용은 같은 해 5월 금리형 ETF인 TIGER CD금리투자KIS(합성)의 총보수를 0.15%에서 0.03%로 낮췄다. 지난해 5월에도 삼성운용이 미국 지수 추종형 ETF 4종의 총보수를 연 0.05%에서 0.0099%로 내리자, 미래에셋운용은 ‘TIGER CD1년금리액티브(합성)’의 총 보수를 0.05%에서 0.0098%까지 끌어내리며 맞불을 놨다.
◇투자자는 좋지만 “결국 시장 줄인다”
업계에서는 이번 미래에셋운용의 총보수 인하에 대응해 삼성운용도 수수료를 따라 낮출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운용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바는 없고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투자자 입장에선 낮아진 ETF 수수료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이익이다. 그러나 권민경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첨예한 경쟁에 따른 무리한 운용 보수 인하 경쟁이 자산운용사 경영 건전성 훼손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내부에서도 운용사 간 출혈경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달 이경준 당시 미래에셋운용 전략 ETF운용본부장(현 키움투자자산운용 ETF 운용 및 마케팅 총괄 상무)은 새 ETF 출시 기자 간담회에서 월 배당 커버드콜 ETF의 분배율 경쟁이 과열되는 양상을 두고 “기초 자산의 성장 가능성을 뛰어넘는 과도한 분배금에는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 일본의 월 지급식 펀드 시장에서 과도한 분배금 경쟁이 생겨나 원금을 훼손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일본 커버드콜 펀드 시장이 크게 줄었는데 그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
◇“ETF 차별화 경쟁력 대결해야”
전문가들은 “수수료 인하 경쟁보다 ETF 상품 간 차별성 경쟁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업계에선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미국 양자 컴퓨터 대표 종목인 아이온큐 등을 집중적으로 담은 ETF를 출시했던 키움투자자산운용이 상품성 경쟁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해당 ETF는 상장 후 12거래일 만에 순자산 규모가 1000억원을 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신한자산운용도 지난달 국내 최초로 미국 S&P500과 일본 엔화에 동시에 투자하는 ‘SOL 미국S&P500 엔화노출(H)’를 출시해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