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 회계 의혹’ 항소심 무죄 선고에 대해 “공소 제기를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6일 밝혔다. 이 회장은 1심에 이어 최근 항소심에서도 19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아니었냐”는 비판이 커졌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사 검사 가운데 처음으로 이 원장이 사과한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 증시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 증시 활성화를 위한 열린 토론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기소 결정을 하고 그 기소의 논리를 만들어 근거를 작성한 입장에서 법원을 설득할 만큼 충분히 준비되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들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이 사건은 2016년 말 참여연대가 삼성바이오의 분식 회계 의혹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이 회장은 2015년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부당하게 합병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 분식 회계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이 원장은 검찰 재직 당시 삼성바이오 기소를 주도했다. 2018년 말 수사 착수 때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수사 라인에 있었다. 이 원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장으로 수사에 투입됐다. 당시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이 원장이 강하게 기소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지난 3일 자본시장법상 부당 합병·주가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원심과 동일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소 사실을 입증하기에는 증거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할 당시, 이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워 이 회장에게 유리한 합병 구도를 만들었다는 데 대해서도 “제일모직 주가 부양을 위한 비정상적 거래가 관찰되지 않았다”며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이 원장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이번 판결로 자본시장법 개정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법부가 (현행) 법 문헌 해석만으로는 주주 가치 보호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며 “법 해석에만 의지하기보다는 (법의 취지가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자본시장법을 포함한 법령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주주들이 피해를 봤는데도, 법원이 법을 좁게 해석해 주주 보호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이 때문에 주주 보호를 명문화하는 방향으로 자본시장법 등 법령을 개정해 주주 보호에 나서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국회에는 ‘기업의 합병·분할 시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된 정부 측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다. 개정안에는 상장법인이 주식을 교환·이전하거나 분할할 때는 목적이나 기대 효과, 가액의 적정성 등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하고 공시해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원장은 “2~3월 중 (개정안을)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