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핵심 계열사인 은행의 이자 이익 증대 등에 힘입어 역대급 실적을 발표한 금융지주들이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들의 ‘팔자’ 행렬에 주가 하락을 겪고 있다. 금융지주의 핵심 계열사가 은행이라 금융지주 주식을 통상 은행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은행주는 다른 주식에 비해 배당이 많기 때문에 작년 초 이후 시작된 ‘밸류 업(기업 가치 제고)’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자로 꼽혔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단순한 실적보다 주주 환원 정책이나 자산 건전성 등을 중요하게 평가하면서 주가 약세를 겪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주 팔아치우는 외국인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는 이달 초 지난해 실적을 발표했는데, 작년 순이익이 16조4205억원으로 전년(14조8908억원)보다 약 10% 늘었다. 기존 최대였던 2022년(15조4904억원)보다 9000억원가량 늘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역대급 실적을 발표한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오히려 대거 빠져나갔다. KB금융은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 이달 5일부터 전날까지 외국인 투자자가 3720억원어치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했고, 신한금융지주도 실적을 발표한 6일부터 전날까지 외국인이 1080억원 순매도했다. 하나금융은 실적 발표 당일인 4일부터 전날까지 외국인이 20억원을 순매도했다. 우리금융만 지난해 실적 발표(7일) 이후 전날까지 유일하게 240억원의 외국인 순매수를 기록했다. 올 들어 18일까지로 따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순매도한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그룹 주식은 약 6149억원어치에 달한다.

그래픽=김현국

실적 발표 이후 KB금융은 이날까지 주가가 9.7%, 신한금융지주는 3.1% 하락했다. 하나금융은 보합세고, 우리금융은 12.6% 올랐다.

◇주주 환원 여력 줄까 우려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목한 것은 실적보다는 자본 건전성과 이에 따른 주주 환원 여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본 건전성은 통상 보통주 자본 비율로 따지는데, 이는 은행의 핵심 자본을 위험 가중 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재무 안정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국내 금융지주들은 이 비율을 13% 선 이상으로 하고자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고환율의 여파로 이 비율이 하락할 우려가 커졌다. 금융권에서는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00원 오르면 보통주 자본 비율이 0.1~0.3%포인트 내려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금융지주사들은 주주 환원 정책의 기준선으로 이 비율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보통주 자본 비율이 13%를 넘으면 초과분을 주주에게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 비율은 간신히 13%대 초반을 방어하면서 투자자들이 금융지주가 약속한 자사주 매입·소각이나 높은 배당을 통한 주주 환원 여력이 제한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금융은 작년 말 보통주 자본 비율이 12.08%지만 지난해 3분기 말(11.96%)보다 개선된 점이 긍정적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주요 금융지주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바탕으로 대규모 주주 환원에 나서는 것에 대해 “재무 건전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금융 당국이 주주 환원을 제한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되면서 주가에 악재가 됐다.

◇은행주 밸류 업 기대는 여전

하지만 은행주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하다. 은행주들의 주가 순자산 비율(PBR)이 여전히 0.5배 안팎에 불과해 저평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PBR은 주가를 장부 가치로 나눈 것으로, 숫자가 작을수록 기업 가치가 저평가됐다는 뜻이다. 이 비율이 1배 미만이면 밸류 업 가능성이 그만큼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김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19일 “상장 은행의 주주 환원 확대에 따른 수급 개선과 (자사주 소각 등으로) 주식 수 감소에 따른 주당 배당금 증가 등을 감안하면 장기 투자로서 매력도 높다”고 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은행주 전체적으로 밸류 업 모멘텀이 위축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시장 기대치를 상회하는 주주 환원 규모를 발표한 은행들은 주가 상승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