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의 근본적 원인은 소극적인 주주환원,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보다는 성장 동력이 부족한 기업이 주를 이루는 경제 구조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양철원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왕수봉 아주대 경영학부 교수,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무엇이 과연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PBR(주가순자산비율)을 설명하는가’)을 오는 28일 한국증권학회 학술발표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 논문은 한국 기업의 낮은 PBR을 주주환원 정책, 거버넌스(지배구조), 성장 잠재 동력 중 어떤 요소가 가장 잘 설명하는지를 다뤘다. PBR이란 주가를 주당순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1 미만일 경우 기업의 시장 가치가 장부상 자산 가치보다 낮게 평가됨을 의미한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 증시의 낮은 PBR은 소극적 주주환원이나 후진적 지배구조보다는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는 기업이 많은 점이 영향을 크게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기업의 투자 성과를 나타내는 자본투자수익률, 투자 규모를 보여주는 자본지출(CAPEX), 업력 등의 지표를 사용해 측정했다. 특히 투자 유형을 설비 등 유형자산에 대한 투자, 연구개발(R&D)과 같은 무형자산 투자로 구분해 살펴봤다.
연구진은 “자본투자 규모가 크고 투자성과가 좋은 기업일수록 PBR이 높았다”며 “투자 종류로 나누면 유형자산보다는 무형자산 투자가 활발한 기업이 높은 PBR에 더 기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의 PBR이 낮다면, 이는 업력이 길고 유형자산 투자가 활발한 기업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런 현상은 한국 시장의 주를 이루는 유가증권시장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논문에서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가치 프리미엄’이 사라지며 저PBR 기업의 주가 상승 탄력이 떨어졌다”고도 분석했다. 가치 프리미엄은 현재 기업 가치가 저평가되어 있다고 해도 향후 가치가 시장에서 제대로 반영되면서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연구진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보기술(IT), 바이오 기업 등 성장 기업의 출현으로 주식시장이 성장주(고PBR) 주도 시장으로 변화하자 가치 프리미엄이 사라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즉, 한국 주식시장은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성장 기업보다는 오랜 업력과 안정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기업이 많아 PBR이 낮은데, 저PBR 기업에 대한 가치 프리미엄까지 사라지면서 국내 증시가 부진한 수익률을 나타내게 됐다는 것이다.
한편 논문은 거버넌스와 PBR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고, 주주환원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인 배당 성향이 높은 기업일수록 오히려 PBR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의 초점이 현재 주주환원, 거버넌스 개선에 맞춰져 있으나, 실상은 이보다 미래 산업에서 두각을 드러낼 성장 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한국 주식시장의 낮은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구조가 설비투자 위주의 오래된 업력을 가진 가치주 중심에서 무형자산 위주의 첨단 기술을 보유한 성장주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며 “한국의 산업구조가 개선돼 성장주에서도 유망한 기업들이 많이 나타날 필요가 있고 이런 방향으로 정부 정책도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