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은행들의 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인 예대금리차는 약 2년 반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 금리 하락기에는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빠르게 내려가 예대금리차가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대출 규제 등을 이유로 시장에 개입하면서 왜곡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연 3%대 금리를 주는 예금이 사실상 사라졌지만, 대출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금융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뒤늦게 대출금리를 인하하겠다고 나섰다.
◇6개월 만에 1%p 이상 벌어진 예대금리차
3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취급한 가계 대출의 1월 예대금리차는 1.29~1.46%포인트(p)로 집계됐다. 약 2년 반 만에 가장 큰 수준이다.
은행별로 보면, NH농협의 예대금리차가 1.46%p로 가장 컸다. 이어 신한(1.42%p)·하나(1.37%p)·우리(1.34%p)·KB국민(1.29%p) 순이었다. 햇살론뱅크 등 정책서민금융 상품을 빼고 각 은행이 계산해서 공시한 것이다.
금리 하락기에는 통상 예대금리차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대출금리는 은행채·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 등 시장금리 하락에 맞춰 즉각 떨어지는 반면, 예금금리는 은행이 자금 조달 비용을 조절하며 천천히 낮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 7월과 비교하면 지난 1월까지 6개월 동안 신한은행은 1.22%p, 우리은행은 1.19%p, KB국민은행은 0.85%p, 하나은행은 0.84%p, NH농협은행은 0.61%p씩 예대금리차가 확대됐다.
◇ 은행, 이자 이익만 불어나
여기에는 금융 당국이 은행 대출금리에 개입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하반기 수도권 집값 상승세로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자 금융 당국은 은행들에 대출 관리를 요구했다. 은행들은 지난해 8월부터 가산금리를 올리는 식으로 대출금리를 올렸지만 아직 충분히 내리지 않은 상황이다. 대출금리를 확 낮추면 가계 부채 증가세를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때 감소세를 보이던 가계대출의 증가세는 다시 가팔라지고 있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27일 기준 736조2772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2조6184억원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월 4762억원 감소했다가, 한 달 만에 반등한 것이다. 증가 폭도 작년 9월(5조6029억원) 이후 최대다.
반면 예금금리는 기준금리 인하에 발 맞춰 내리면서 이미 시중은행에서 연 3%대 이자를 주는 정기예금 상품이 자취를 감췄다. 3일 기준 신한·우리·하나·KB국민 등 4대 시중은행의 12개월 예금 상품 금리는 연 2% 후반으로 집계됐다. 우리은행만 연 3% 금리를 주고, 신한·하나·국민은 연 2.95% 금리를 준다. 이마저도 우대금리를 포함해 가까스로 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에 은행들이 예금금리만 빠르게 낮추고 대출금리는 높게 유지하면서 이자 마진을 극대화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도 최근 “은행도 진퇴양난인 것을 알지만, 국민이 현재 은행의 금리 반응 속도나 수준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부랴부랴 대출금리 인하 나서
금리 인하기에도 대출금리가 안 내려간다는 금융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시중은행들은 일단 이번 주에 가산금리를 낮추는 식으로 가계대출 금리를 일제히 인하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가계대출 가산금리를 최대 0.2%p 낮추는 것을 검토중이다. 앞서 1월 14일 가계대출 가산금리를 0.05∼0.30%p 일제히 낮춘 데 이어 올 들어 두 번째 인하다.
KB국민은행도 은행채 5년물 금리를 지표로 삼는 가계대출 금리를 0.08%p 인하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5일부터 개인신용대출 대표 상품인 ‘우리WON갈아타기 직장인대출’ 금리를 0.2%p 내리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이미 지난달 28일 주택담보대출 5년 변동(주기형) 상품의 가산금리를 0.25%p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