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시가총액은 투자자가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읽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유용한 지표다. 개별 기업의 부침(浮沈)은 물론, 시장이 지금 어떤 산업의 미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지, 과거와 비교해 산업 트렌드는 어떻게 변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올해 대한민국 시가총액 지형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9일 조선일보 [왕개미연구소]가 10대(大) 그룹의 시가총액 변화에서 지금 한국 증시를 이끄는 주도주와 투자 힌트를 찾아봤다.

✅한화그룹 비상(飛上)... 삼성그룹 굴욕

지난해 8월 22일 한국거래소는 ‘밸류업(기업 가치 개선)을 위한 10대 그룹 간담회’를 개최했다. 한국 경제의 대표 기업들이 밸류업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 저평가된 한국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는 삼성, SK, LG, 포스코, 롯데, 한화, GS, HD현대, 신세계 등 10대 그룹 재무 담당 임원들이 참석했다(현대차만 불참). 거래소가 10대 그룹 재무 담당 임원과 밸류업 관련 간담회를 연 것은 처음이었다.

7개월쯤 지난 지금, 10대 그룹의 시가총액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8월 밸류업 간담회 이후 지난 6일까지 시가총액이 늘어난 곳은 10대 그룹 중 4곳 뿐이었다. 한화그룹이 88% 증가해 시총이 가장 많이 늘었고, 그다음은 HD현대(29%), 신세계(9.5%), SK(4.9%) 순이었다.

반면 6개 그룹은 시가총액이 오히려 쪼그라들면서 체면을 구겼다. 반도체 경기 둔화 여파로 삼성그룹이 가장 많이(-22%) 줄었고, 포스코(-18.5%), GS(-13.7%), 롯데(-10.6%), LG(-9.8%), 현대차(-2.4%) 등도 시가총액이 감소했다.

작년 8월 한국거래소 밸류업 간담회 이후 지난 6일까지 시가총액이 늘어난 그룹은 한화, HD현대, 신세계, SK였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올해 상승률 2~3위 모두 한화 계열사

한화그룹의 시가총액 증가는 11개 상장사 중 한화에어로스페이스(옛 삼성테크윈)와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의 역할이 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 상승률 2위와 3위는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129%)와 한화오션(118%)이었다. 코스피 상승률 1위는 평화홀딩스(자동차 부품업체)인데, 정치 테마에 얽히면서 174% 올랐다.

김종민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과거 시총 상위 기업들을 보면, 2021년에는 온라인 포털(카카오, 네이버), 2023년에는 전기차 관련 기업(LG에너지솔루션, POSCO홀딩스, LG화학)이 주도했다”면서 “지금은 미국 정책 수혜 기대감 속에서 조선·방산 기업들의 시총 증가세가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선·방산 업종이 급부상하면서 개별 기업들의 시총 순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작년 말 시총 28위였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0위에 진입했고, 34위였던 한화오션은 12위로 상승했다.

올해 한국 증시 주도주는 100% 넘게 올라서 미국, 중국, 독일의 주요 종목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한화에어로, 증시 혼란기에 역대 최고가

지난 7일 코스피가 전날 대비 0.5% 하락해 마감한 상황에서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역대 최고가(종가 73만1000원)로 마감하며 비상했다. 이날 외국인이 유가증권 시장에서 가장 많이 모은 종목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1494억원)였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예상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0% 늘어난 2조3800억원이다. 주가가 실적 대비 어느 정도인지 나타내는 예상 주가수익비율(PER, 높을수록 고평가)은 18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분을 34%(11조원 상당) 보유하고 있는 모(母)회사 한화도 이날 주가가 6% 상승하면서 4만7650원에 마감했다. 한화는 오랫동안 저평가의 대명사였지만, 자회사 지분 가치가 부각되면서 올해 들어 주가가 77% 상승했다. 현재 시가총액은 3조원대.

한화 다음으로 시총이 많이 증가한 그룹은 HD현대였다. 9개 상장사 중 HD현대인프라코어(39%), HD현대에너지솔루션(36%), HD현대건설기계(34%) 등이 올해 30% 넘게 상승하며 그룹 위상을 높였다.

이마트 등 유통업체가 많은 신세계 계열사는 심각한 내수 부진으로 상승·하락 사이클마저 사라진 소외주가 많았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1년 전 회장에 취임하면서 책임 경영을 선언했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했다.

그러나 경쟁사의 기업 회생으로 반사이익 기대감이 커지면서 그룹 계열사 주가는 연일 최고가를 경신 중이다. 연초만 해도 6만원대였던 이마트 주가는 7일 장중 8만7900원을 기록하며 1년 최고가를 새로 썼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단기 급등한 종목, 공매도 타깃 가능성

특정 기업의 시가총액 증가는 해당 산업의 성장 신호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적 개선이 아닌 테마나 투기적 수요 때문에 시총이 늘었다면, 단기적인 거품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업황이 하락·침체기에 들어갔거나 관세 등 외부 요인에 의해 한국 주요 그룹 대부분은 시가총액이 감소했다”면서 “반면 장기 하락세였던 조선·방산 등은 수퍼사이클(장기 상승장)에 진입하면서 시총이 늘었다”고 말했다.

한편, 조선·방산 업종은 단기간 급등했기 때문에 매수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가 이달 말 1년 5개월여 만에 전면 재개되는 상황에서 조선·방산주가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화그룹 주요 계열사의 주가는 이미 증권사들이 제시한 목표가를 크게 넘어섰다”면서 “주가 상승 속도가 예상치를 뛰어넘으면 목표 주가 조정이 따라오지 못해 공매도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뇌가 늙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뭘까, 70대 연금왕 부부가 받는 금액은 얼마일까... 조선일보 [왕개미연구소]의 기사 100개를 모아둔 모음집이 새단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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