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뉴스1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법 개정안을 재차 비판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데에 따른 것이다. 이 원장은 주주 권익 보호가 국가적 과제라면서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3일 이 원장은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기업·주주 상생의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열린 토론’에서 “상법은 원칙적 주주 보호 의무 선언에 그치고 있어 실제 개정 시 발생할 여러 문제를 간과한 게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이 원장은 우리 법원이 법을 좁게 해석하고 있다며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로만 본 탓에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합병, 유상증자, 상장 사례가 재발하고 있다는 뜻에서다. 그러면서도 소송이 남발할 가능성이 있어 배임죄가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원장은 상법 개정안 자체를 반대하고 나섰다. 상법을 개정하면 적용받는 회사의 수가 많으니 문제가 되는 사안만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핀셋처럼 바로 잡자고 했다.

이날 이 원장은 “기업 경영 판단이 과도한 형사 판단 대상이 되지 않도록 특별 배임죄 폐지 또는 가이드라인 제시를 통해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주 보호 이행을 위한 세부 절차를 자본시장법에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이사회의 합리적 의사결정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벼를 빨리 자라게 하려고 잡아 올리면 말라 죽는다”며 “주주, 당국 등 이해관계자 모두 균형감 있고 정치한 결론 도출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외에도 행동주의 기관엔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캠페인을, 기관 투자자엔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당부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자산운용사의 충실한 의결권 행사 방안’을 주제로 발표를 맡은 이연임 금융투자협회 박사는 의결권 행사 시스템과 제도가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먼저 시스템 개선과 관련해 이 박사는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관련 조직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전담 조직팀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의결권 행사 절차의 체계화를 위해 ▲독립적인 사내 의결권행사위원회 설치 및 외부 전문가 참여 ▲의결권 행사 전 기업-자산운용사 대화 프로세스 강화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등을 제시했다.

제도 개선에 대해선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이 수탁기관을 선정할 때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여부를 강화해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기관 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다. 스튜어드십 활동 보고서 발간,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 여부 공시도 제안했다.

‘주주 행동주의 동향 및 시사점’을 주제로 발표한 안효섭 한국ESG연구소 본부장은 국내 행동주의 투자에 명과 암을 분석했다. 주주 중심의 경영을 유도하는 건 긍정적이지만, 과도한 단기 수익 추구로 일반 주주의 피해는 부정적인 측면이다.

그러면서도 상장기업은 기업과 주주가 적대적이 아닌 파트너 관계로 여기고 협력하는 게 유리하다고 봤다. 안 본부장은 “개인 투자자, 행동주의 투자자, 상장 기업 등 시장 참여자의 협력을 통해 바람직한 행동주의 투자 관행이 정착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