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가가 왜 이렇게 오르는 건가요? 혹시 이재용 회장의 사즉생(死卽生) 발언 때문인가요?”

“방산주가 자꾸 오르길래 갈아타려고 지난주 손해 보고 탈출했는데, 오늘 5% 넘게 오르는 걸 보니 속상하네요.”

17일 유가증권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가가 전날 대비 5.3% 오른 5만7600원에 마감하자, 516만 개인 주주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삼성전자 주가가 5% 넘게 상승해 마감하는 건 올 들어 처음이다.

이날 오전부터 삼성전자에는 골드만삭스, JP모간 등 외국계 증권사 창구를 통한 폭풍 매수세가 이어졌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4951억원, 2288억원씩 동반 순매수하면서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이날 하루 거래량도 3500만주를 넘어서면서 평소 1000만주에 비해 급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뉴스1

✅‘황제의 귀환’에 코스피 2610선 안착

대장주 삼성전자의 주가가 강하게 반등한 덕분에 코스피 역시 이날 전날 대비 1.73% 상승한 2610.69에서 마감했다. 이날 일본 닛케이평균(0.9%)이나 중국 상하이(0.2%), 홍콩H(0.6%), 대만 자취안(0.7%)의 상승률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주 엔비디아가 개최하는 인공지능(AI) 개발자 콘퍼런스(GTC 2025)가 열리는데,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삼성전자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관련해 긍정적 의견을 낼 것이란 기대가 삼성전자 매수 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GTC 2025에 전시 부스를 마련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오는 19일 삼성전자 주주 총회를 앞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한 발언에 주목했다. 이재용 회장은 최근 삼성 임원들에게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고 질책하면서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즉생은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라는 뜻으로, 리더들이 위기 상황에서 결의를 다질 때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떠올라”

시장이 듣고 싶어 하던 발언이 나와서 주가가 바로 반응했다는 의견도 있다. 삼성전자 소액 주주인 이모씨는 “재벌 걱정은 할 필요 없다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끝없이 떨어지는 주가를 보면서 (삼성전자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재용 회장이 ‘사즉생’이라고 말했다는 걸 들으면서 30년 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1993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발표한 경영 혁신 선언을 일컫는다. 당시 삼성전자는 일본 전자업체들에 밀리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고 이후 삼성은 대대적인 혁신을 거듭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삼성전자, 올해 外人 순매도 1위

삼성전자는 올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2조7500억원 넘게 팔아치워 순매도 1위를 기록 중이다. 이 중 2조원어치는 삼성전자가 자사주로 매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1년 동안 자사주 10조원어치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개미 군단은 연초 이후 14일까지 삼성전자 주식을 9930억원어치 사 모았다. 최근 1년 동안 주가가 20% 하락해 10명 중 9명이 손실(NH투자증권 76만명 기준)일 정도로 부진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가 매수 기회로 판단한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꾸준히 이어졌다. 올해 개인 순매수 종목 1위는 삼성전자가 차지했고, 2위 삼성SDI, 3위 현대차, 4위 HD현대미포, 5위 한화오션 순이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주가가 박스권에서 벗어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개 증권사들의 실적 컨센서스(전망치)를 보면, 올해 1분기(1~3월)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5조116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6개월 목표 주가 7만1000원을 제시한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범용 메모리 가격 하락으로 2025년 영업이익은 15.2%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자사주 소각, 밸류에이션(기업 평가) 매력 등을 고려하면 추가적인 하락 위험은 낮지만, D램 사업 부문의 체질 개선이 확인되지 않으면 주가 재평가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