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은행들이 오는 하반기 도입이 예정된 스트레스완충자본 규제 유예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환율 리스크에 위험가중자산(RWA) 비율 부담으로 기업 대출이 확연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도 금융사들의 부담 완화를 위해 건전성 규제를 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825조2093억원으로 2월 말과 비교해서 한 달 만에 2조4937억원 감소했다. 전 은행권으로 넓혀 봐도 감소했는데, 한국은행의 ‘3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기업 대출 잔액은 1324조3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약 2조1000억원 감소했다. 3월 기준 기업 대출이 줄어든 건 2005년 3월 이후 20년 만이다.

은행들은 이처럼 기업 대출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 위험가중자산(RWA)으로 인한 건전성 사수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동일한 자산 규모를 가지고 있어도 RWA가 높으면 그만큼 회수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하는데, 같은 대출이라도 기업 대출이 담보가 있는 대출보다 RWA가 높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의 분모가 되는 수치인 RWA를 낮추기 위해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이다.

고환율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기업 대출을 줄인 이유다. 환율이 상승하면 외화 대출의 원화 환산액이 커지면서 RWA 증가로 이어지는데,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400원대를 유지하면서 위험도가 높은 기업 대출을 적극적으로 영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 등 BIS 분모를 높이게 되는 업종이나 자산 유형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라는 것이 당국의 분위기인데, 은행 입장에서는 RWA가 증가하는 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라며 “스트레스완충자본 규제 유예는 위험가중치 하향 조정에 더해 큰 틀에서 은행의 부담을 덜기 위한 요구다”라고 말했다.

은행권이 요구하는 스트레스완충자본은 은행에 위기 상황을 대비한 추가 자본 적립 의무를 부과해 손실 흡수 능력을 강화하는 규제다. 위기상황 분석(스트레스테스트)에 따른 보통주자본비율 하락 수준에 따라 최대 2.5%포인트의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부과한다. 당국은 지난해 급격하게 환율이 높아지면서 자기자본비율 하락을 우려해 규제 도입을 올해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연기했다. 스트레스 완충 자본 도입으로 보통주자본비율(CET1) 등 자산 건전성 수치를 더 크게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스트레스완충자본 규제를 유예하면서 당국과 은행권 모두 기업금융 영토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고환율이 지속되고 미국 관세 정책 등 리스크가 이어지면서 기업금융은 더 쪼그라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기업 대출을 더 늘리고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선 금융 당국이 검토 중인 RWA 가중치 하향 조정에 더해 스트레스완충자본 규제 유예도 포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 당국도 관련 내용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올해 은행권에 실물 결제 지원을 위해 중기 대출에 힘을 모아달라고 하고 있는 만큼 은행의 리스크를 줄이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라며 “추가적인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은행연합회를 통해 연합회 차원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