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에 접어든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다. 먼저 금리를 내렸다가 자칫 대출 수요가 쏠리면 금융 당국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어 은행들은 눈치만 살살 보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올해 남은 상반기에도 대출 금리를 내리기보다 비금리 방식으로 가계대출을 조였다가 풀었다가 할 전망이다. 금융 당국도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은행들에 적극적으로 금리 인하를 독려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신규 취급 주담대 평균 금리는 지난달 기준 4.27~4.52%로 분포돼 있다. 지난 1월 평균 금리대인 4.28~4.55%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두 차례, 올해에도 2월 한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은행 주담대 금리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올해 남은 상반기에도 주담대 금리를 내리지 않는 방침을 우선 검토하고 있다. 대신 상황에 따라 비금리 방식으로 가계 대출 공급을 조절할 계획이다. 비금리 방식이란 금리를 건드리지 않고 대출 취급을 조절하는 방법을 뜻한다. 차주(돈 빌리는 사람) 및 담보물 조건 제한, 만기 상환 기한 조정, 대출금 한도 조정 등이 대표적인 비금리 방식이다. 최근 서울 일부 지역 중심으로 가계 대출 급증이 우려되자 일부 은행들이 서울 투기 위험 지역 혹은 수도권 유주택자에게 주담대를 제한하는 방침을 도입하는 등 비금리 방식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은행이 금리를 내리지 않고 복잡하게 비금리 방식을 조였다 푸는 이유는 금리 인하에 따른 즉각적인 가계 대출 자극을 피하기 위함이다. 오는 7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등으로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만큼, 규제 강화 전 막차 수요가 예상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 은행이 금리를 내리면 대출을 미리 받으려는 소비자들이 해당 은행에 몰리게 된다. 이는 금융 당국의 정책 기조와도 어긋난다. 금융 당국은 올해 특정 시기에 가계 대출이 급증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공언하며 금융사들에게도 정책에 동참해달라고 독려했다.
은행 입장에선 괜히 금융 당국 눈 밖에 나는 위험을 지기 싫으니 섣불리 금리를 내리지 않는 셈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대출 수요는 금리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며 “금리가 조금이라도 다른 은행보다 낮으면 대출받으려는 소비자들이 우르르 몰린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모든 은행이 다 대출 금리를 내리지 못할 때 먼저 금리를 낮추고 고객을 끌어모으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느냐”며 “가계 대출 총량 관리가 엄격하게 이뤄지는 동안 대출 금리를 먼저 내리지 않으려는 눈치 게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금융 당국도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은행권에 대출 금리를 인하하라고 적극적으로 압박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리 산정은 은행 고유 권한인 데다 금리 인하 후 대출이 급증하면 정책 실패의 책임을 금융 당국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 당국은 가계 대출 관련 논의 자리에서 은행권에 대출 변동성이 커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