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 싱가포르를 제치고 아시아 최고 금융 중심지로 우뚝 섰다.”(홍콩 일간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지난달 20일 홍콩증권거래소 주변은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홍콩 시위와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사라졌다던 외국인 금융맨들도 많이 보였다. 이날 밤 홍콩 증권사들이 모여 있는 글로스터 타워 45층에 위치한 라운지바 카디널 포인트도 퇴근 후 한잔하는 금융맨들로 붐볐다. 영국 런던에서 왔다는 대니얼은 “최근 홍콩에 대규모 기업공개(IPO)나 투자 콘퍼런스 등 출장이 많아져 자주 오고 있다”며 “한동안 활기를 잃었던 홍콩 금융가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아시아 1위 자리 찾다
구관이 명관인 것일까. 홍콩이 싱가포르에 빼앗겼던 ‘아시아 금융 허브 자리’를 다시 찾아왔다.
영국 싱크탱크 지옌이 최근 발표한 글로벌 금융 센터 지수(GFCI)에 따르면, 홍콩은 올해 뉴욕, 런던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다. 2022~2023년 홍콩을 제치고 3위를 했던 싱가포르는 4위였다. 2007년부터 발표한 이 지수는 글로벌 금융 허브의 순위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 제공하는 100개 이상 지표를 갖고 평가하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권위가 가장 높다.
홍콩은 2010년대까지만 해도 부동의 3위로 ‘아시아 금융 허브’ 자리를 확고히 지켰다. 하지만 2019년 민주화 운동에 이어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2020년 5위까지 하락했다. 2022~2023년 홍콩이 싱가포르에 뒤처지자, 2023년 10월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기업들의 아시아 본부와 금융 허브를 두고 오랜 경쟁을 한 홍콩과 싱가포르 중 승자가 드디어 결정됐다”고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다시 홍콩이 치고 올라왔고, 올해 정상 자리를 굳건히 다지게 됐다.
◇IPO 시장… 관세전쟁이 홍콩 더 키워
그 이유는 먼저, 홍콩 기업공개(IPO) 시장의 성장이다. 홍콩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증시에서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 규모는 880억 홍콩달러(약 16조4800억원)로 전년 대비 1.9배 증가했다. PwC컨설팅은 “올해 홍콩 IPO 자금 조달이 1600억 홍콩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럴 경우 세계 3대 IPO 시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발(發) 관세전쟁은 홍콩 IPO 시장을 더욱 키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관세전쟁 속 미·중 긴장감이 고조되자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하려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 증시보다 홍콩 증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미국이 중국 주식을 미국 거래소에서 상장폐지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가성비 좋은 인공지능(AI)인 딥시크 영향으로 홍콩 주식시장 진출에 도전하는 중국 스타트업도 늘고 있다. 홍콩 당국도 상장 요건과 심사 절차 개선, 중국 본토 증시와 이중 상장 조건 효율화 등 IPO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고 나섰다.
◇글로벌 금융인, 다시 홍콩으로
홍콩으로 글로벌 금융인이 복귀하는 분위기도 조성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26일 “미 월가가 위기에 처하자 인재들이 홍콩 금융사로 몰리고 있다”며 “지난해 UBS 등에서 근무한 인재들이 (홍콩 내) 중국 증권사에서 일자리를 찾았다”고 전했다. 그간 중국 정부의 정책으로 금융권 연봉이 제한되면서 많은 금융맨이 떠났지만, 미 금융권이 위기로 해고 등을 실시하고 홍콩 금융가가 살아나자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 글로벌 증권사 관계자는 “싱가포르에 법인을 내려고 했는데, 현지 직원 채용 등 싱가포르 규제가 홍콩보다 더 심해 포기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은 정부가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을 홍콩을 대체하는 금융 허브 도시로 키우기 위해 각종 지원을 했다. 하지만 결국 민간 돈이 홍콩으로 모이자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1월 “본토와 홍콩 간 금융 접근성을 강화하고, 가상 자산, 금, 위안화 해외 업무 등을 지원하는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