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또 팔았다”
오늘도 공시창을 열자마자 익숙한 기업이 줄줄이 등장했다. 전날(23일)에도 정치테마주 대주주의 주식 매도 건이 여러 건 나왔다. 장 마감 이후 코나아이는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행사를 공시했고(매도하기 위해 행사했을 것이다) 엑스페릭스는 주요 주주의 주식 매도 소식을 전했다. 포바이포 지배주주 또한 갖고 있던 주식 80% 가까이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모두 특정 정치인과 엮여 주가가 크게 오른 정치 테마주들이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유력 후보나 공약과 관련된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자, 대주주와 경영진 등 내부자들은 이 기회를 틈타 주식을 매도하는 모습이다.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익숙한 풍경이다.
최근 ‘이재명 테마주’로 묶여 주가가 급등한 DSC인베스트먼트 주요 관계자 8명이 주식을 팔아 수십억원을 현금화했고, 코나아이·동신건설 등도 대표와 친인척이 보유 지분을 대거 매도하며 차익을 실현했다. 실적 개선과는 무관하게 정치인과의 연관성만으로 주가가 급등하자 임원들도 다신 오기 어려운 ‘잭팟’ 기회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같은 내부자 매도는 시장에서 ‘고점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주요 주주나 경영진의 매도 공시 직후 해당 종목 주가는 급락할 가능성이 높다. DSC인베스트먼트의 경우, 임원 매도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주가가 11% 넘게 떨어졌다. 고점에서 차익을 실현한 내부자와 달리, 뒤늦게 뛰어든 개인 투자자들은 손실을 떠안는 구조가 반복된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실제 수혜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내부자는 개인 투자자들보다 항상 한발 앞설 수밖에 없다.
지분 매도 공시는 공시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은 개인투자자라면 놓치기 십상이다. 전환사채(CB) 전환청구, 신주인수권부사채(BW) 행사 등은 개인이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러한 소식은 대부분 공시로만 조용히, 그것도 정규장 마감 이후에 올라온다.
정치 테마주 열풍에 코스닥 시장이 ‘웃픈 전성기’를 맞이했단 이야기도 나온다. 이달 들어(4월 1일~4월 23일) 코스닥 거래량은 165억주로, 지난달 같은 기간(98억) 대비 68.3% 증가했다. 정치 테마주로 분류된 기업 대부분이 자산과 매출 규모가 작은 코스닥 상장사이다 보니 투자자들의 손바뀜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 테마주는 끝이 정해진 테마다. 과거 대선 때도 정치인과 연관된 인사를 임원으로 위장 영입하거나, 근거 없는 풍문을 유포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23일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나 막연한 기대만으로 주가와 거래가 급증하는 종목에 대한 추종 매매를 자제하라”며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까지도 개인투자자들이 정치·정책 테마주 찾기에 한창인 것을 보면, 6월 3일 조기 대선 직전 재료가 소진되기 전까지 이미 물린 자와 물릴 자 간의 ‘폭탄 돌리기’가 계속되지 않을까 염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