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 월드투어 콘서트에서 그룹 르세라핌의 리더 김채원 /쏘스뮤직

 “1년 전, 회사 분에게 울면서 말했어요.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해요? 앞이 있긴 할까요? 한 치 앞이 안 보여요. 그래도 해야죠. 넘을 수 없는 벽과 마주했을 때 해야 할 것은 그냥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뿐요.”

지난 20일 인천 인스파이어에서 열린 르세라핌 월드투어 콘서트에서 멤버 허윤진이 말했습니다. 늘 강해 보이는 그녀도 콘서트장을 가득 채운 팬들 앞에서는 약해졌습니다. “지난 1년이라는 시간,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4월 25일은 민희진 전(前) 어도어 대표의 욕설 기자회견이 열린 날이었습니다. 회사 하이브로부터 받고 있던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나온 이 자리에서 민 대표는 “르세라핌이 런칭도 이상하게 했고, 마치 하이브에서 모든 수혜를 받은 팀인 것처럼 포지셔닝하니깐”이라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방시혁 의장 VS 민 전 대표’의 구도는 ‘뉴진스 VS 르세라핌(+아일릿)’으로 확대됐습니다. 소속사(계열사) 대표가 소속 그룹을 공격한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룹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25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하이브 경영권 탈취 시도와 관련한 배임 의혹 관련 입장을 밝히는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4.4.25/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그 당시 르세라핌이 비판받은 이유는 그룹 ‘뉴진스’보다 먼저 데뷔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엔터업계에서 데뷔 순서가 바뀌고, 심할 경우 어그러지는 것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민 전 대표였습니다. 소속사 하이브는 주력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키우고 있는 위버스 플랫폼도 포기하고 뉴진스만을 위한 ‘포닝’까지 만들어줬음에도 두 그룹의 구도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세팅됐습니다. 욕설 기자회견에 매료된 대중과 뉴진스 팬들은 민 전 대표의 시선으로 다 함께 르세라핌을 비판했습니다.

르세라핌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뉴진스보다 먼저 데뷔하겠다고 조른 것도 아니고, 방 의장과 민 전 대표의 싸움을 부추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르세라핌은 데뷔한 지 1년 된 신인 걸그룹이었을 뿐입니다. 막내인 은채는 아직 미성년이었습니다.

살다보면 세상이 나를 억까(억울한 비판)하는 것 같은 순간이 옵니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살고 있었을 뿐인데, 억까의 시작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를 공격합니다. 수습하려고 해도, 추가 비판의 기름만 제공할 뿐입니다. 불붙기 시작한 억까의 여론은 어떻게 해도 진정되지 않습니다.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 후 지난 1년은 르세라핌이 이런 세상의 억까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되는 여기 힙해 52번째 이야기입니다.

<1>내 사람들을 믿고, 묵묵히 할 일을 해라

르세라핌 허윤진 /쏘스뮤직

세상의 억까에 대처하는 법 첫 번째는“내 사람들을 믿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르세라핌은 민 대표 기자회견 이후 비판 받는 상황에서도 힘들다며 활동 중단을 선언하거나, 스케줄을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걸어왔고, 걸어갈 것”이라는 리더 김채원의 말처럼 그들은 앨범 두 개를 발표했고, 한국과 일본에서 팬미팅 일정도 소화했습니다. 민 대표 기자회견 후 4개월 만에 발표한 미니4집 ‘크레이지(Crazy)’는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HOT 100에 76위, 영국 오피셜 차트 TOP 100에 86위로 진입하며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습니다. 이번 미니 5집 ‘HOT’의 활동으로는 이날 공연을 시작으로 다음 달 일본, 태국, 싱가포르, 미국 공연 등을 이어갑니다. 르세라핌은 “해명문을 몇 번이나 썼다가 지웠다”고 했습니다. 그냥 묵묵히 자신들의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르세라핌 홍은채 /쏘스뮤직

리더 김채원은 “계속 피어나(팬클럽)로 있어줘서 너무 감사하다”며 “어떤 일이 있어도 피어나만, 르세라핌만 있으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강해질 수 있게 된 좋은 기회였고, 더 단단해졌고, 저희 일을 잘해 낼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허윤진도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힘들긴 하지만 포기하긴 억울했다”며 “더 노력해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하며 1년을 버텼다”고 했습니다. 홍은채도 “힘들 때 함께하는 존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기에, 완벽하지는 못해도 최선을 다하는 팀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2>수용할 만한 비판은 수용하고 실력을 키워라

르세라핌 카즈하 /쏘스뮤직

세상이 나를 억까할 때 두 번째 대처법은 “수용할 만한 비판은 수용하고 실력을 키워라”입니다.

민 대표 기자회견 즈음 터진 또 다른 논란은 르세라핌의 코첼라 가창력 논란이었습니다. 미국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이 못했다고 국민적인 비난을 받아야 하는 올림픽 같은 국가대표 대회는 아니지만, 가수가 라이브 무대가 약하다는 비판은 아픈 것이었습니다.

르세라핌은 이런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연습했다고 했습니다. 멤버 카즈하는 “저희끼리 옛날 영상을 보며 열심히 연습했다. 그렇게 하다보면 지금까지 겪은 모든 과정들이 더욱 빛나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르세라핌 사쿠라 /쏘스뮤직

이날 르세라핌의 무대는 작년보다 한층 발전했습니다. 22곡을 달리는 긴 공연에도 춤과 노래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영국 유명 밴드 정글이 참여한 ‘컴 오버(come over)’ 무대의 완성도는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 민 전 대표 기자회견 이후 나온 두 앨범의 성적이 예전보다 부진하고, 멤버들의 노래와 춤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비판의 여론은 꺼지지 않고 더욱 타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멤버들의 실력도, 팀의 성적도 오히려 오르고, 이제는 월드투어를 시작하는 기반을 만들자 과거 비판 여론이 어느 정도 잡힌 것입니다.

<3>결국 승리자는 실력과 성적으로 증명하는 자

한화생명 e스포츠 제우스 선수 /라이엇코리아, LCK

지난해 11월 e스포츠 리그오브레전드 한국리그 LCK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T1 소속으로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MZ남성들의 월드컵 ‘롤드컵’에서 2회 우승을 함께한 제우스(최우제) 선수의 한화생명 e스포츠로의 이적이었습니다.

프로스포츠에서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린 선수가 조건이 맞지 않아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것은 비일비재하지만, 그 때부터 최 선수는 배신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과거에는 패기있다고 칭찬받은 영상들도 갑자기 비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산업/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선릉T1 타워에서 조 마쉬 SKT-컴캐스트 T1 E스포츠 게임단 대표가 본지와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이 사건 역시 싸움에 불을 지른 건 소속 구단 T1의 조 마쉬 대표였습니다. 서면 인터뷰와 트위터로 이적 과정에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불타오른 제우스 선수에 대한 비판은 종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T1의 주장 페이커(이상혁) 선수가 “서로 비난하지 말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러분이 보는 것과 실제 상황이 다를 수도 있고”라고도 했지만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제우스 선수가 자신의 입장을 대중에게 설득시키기 시작한 것은 이적 후 개최된 첫 국제대회 ‘퍼스트스탠드’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팀을 우승시키면서부터입니다. 그제야 대중들은 “제우스 선수가 T1에 남고 싶었지만, 도저히 사인할 수 없는 계약서를 받았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중음악이나 프로스포츠나, 사람들의 관심으로 먹고사는 이들이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최우선 조건은 실력과 성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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