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이모(31)씨는 최근 회사 근처에 월셋집을 구하다가 ‘이렇게 살아서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는커녕, 방 한 칸짜리 낡은 오피스텔도 월세가 100만원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는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매달 월세로 내고서는 평생 모아도 전셋집도 못 구할 판"이라고 했다. 결국 그는 회사까지 1시간 넘게 걸리는 경기도에 월셋집을 마련했다.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를 담은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지난 7월 말 시행된 후, ‘전세 대란’을 넘어 이제 월세 시장마저 들썩이고 있다. 23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월세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78% 급등,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6년 1월 이후 4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월(0.12%) 대비 상승률이 6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월 0.78% 상승세가 1년간 이어지면 전체 월세 시장의 평균 가격이 10% 가까이 오르는 셈이다. 수도권 월세 상승률도 지난달 0.6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제 시장에서는 월세 급등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하왕십리 센트라스 전용면적 84㎡는 지난 6월 보증금 2억원·월세 210만원에서 9월엔 보증금 3억원·월세 230만원으로 올랐다. 서울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84㎡는 6월에 보증금 13억원·월세 120만원에서 10월엔 보증금 13억원·월세 210만원으로 급등했다.
월세 상승은 치솟은 전세 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이 월세로 몰리며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실거주하는 집주인이 늘어나면서 월세 매물은 줄어든 영향이다. 석 달 전보다 서울 아파트 월세 매물은 57.2% 급감했다. 정부가 전·월세 전환율을 지난 8월 4%에서 2.5%로 낮췄지만, 신규 계약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월세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임대차법 개정 충격이 전세 대란에 이어 월세 시장으로까지 번졌다”며 “반(反)시장적 정책의 부작용이 서민 피해로 귀결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