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한복판에 지은 시세 4000억원대 빌딩인 ‘바로세움3차(현 에이프로스퀘어)’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7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법원이 소유권을 강제로 빼앗겼다는 시행사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재심 여부 판단 절차에 들어간 것. 이 사건에는 두산중공업, 하나은행, 한국자산신탁 등 대기업이 대거 관련돼 있다.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난 사안에 대해 법원이 재심 여부를 검토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재판 결과에 따라 수천억원 대 건물 소유권이 바뀔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새 증거 나왔다” 7년만에 재심 여부 판단
바로세움3차는 서울 서초구 교보타워사거리 인근에 2011년 1월 완공한 지상 15층 빌딩. 시행사인 시선알디아이(RDI)는 당시 빌딩을 짓기 위해 1200억원대 은행 대출을 받아 사용했는데 분양 지연 등으로 변제가 늦어지자, 지급보증을 섰던 시공사(두산중공업)가 대위 변제를 했고, 수탁사(한국자산신탁)는 건물을 공매 처분해 엠플러스자산운용에 소유권을 넘겼다.
소유권을 빼앗긴 시선RDI도 가만있지 않았다. 시공사와 수탁사가 공모해 불법으로 소유권을 빼앗았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4년 시공사와 수탁사 손을 들어줬다.
이렇게 불씨가 꺼진듯했던 이 사건은 시선RDI가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다”면서 법원에 재심을 신청하면서 2라운드를 맞고 있다. 법원이 시선RDI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재심 여부 판단 절차를 시작한 것. 지난달 22일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시선RDI 측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시공사였던 두산중공업과 채권금융기관인 하나은행을 사기·사문서 위조혐의 등으로 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김대근 시선RDI 대표는 “과거 재판에서 알지 못했던 결정적인 증거를 새로 확보했고, 재심과 추가 고소에서 이 부분을 증거로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1000억원 신용공여 약정 논란
시선RDI는 이 빌딩을 지으면서 2008년 사업자금 조달을 위해 특수목적법인인 시선바로세움을 세웠다. 이 법인을 통해 바로세움3차 빌딩의 우선수익권을 담보로 기업어음 1200억원을 발행했다. 그러나 어음 만기인 2011년 5월 30일까지 갚지 못했고, 두산중공업이 대위변제하게 돼 소유권을 빼앗겼다.
시선RDI가 주장하는 새로운 증거란 어음 만기에 맞춰 하나은행과 약정에 따라 자체적으로 마련한 1000억원으로 이미 이를 상환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어음을 만기까지 갚지 못하면 하나은행이 상환을 위해 신용공여(대출)해주기로 약정했다”면서 “이 약정에 따라 만기일에 맞춰 1000억원이 시선바로세움 계좌에 입금됐고, 다른 경로로 마련한 200억원과 함께 같은 날 어음을 전액 상환했다”고 주장했다.
두산중공업이 대위변제하겠다며 1000억원을 시선바로세움 계좌에 입금한 것은 어음을 상환한지 하루 뒤인 2011년 5월 31일이었다. 하나은행은 시선RDI에 통보하지 않고 이 1000억원으로 하루 전날 실행한 시선RDI 대출을 즉시 회수했다. 뿐만 아니라 시선RDI 동의 없이 법인 인감을 날인해 대위변제 확인서도 발급했다고 김 대표는 주장한다. 김 대표는 하나은행이 시선바로세움 법인 통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패소 확정 후인 2019년 초쯤 확인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이미 어음을 상환한 상태였기 때문에 두산중공업이 대위 변제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하나은행 측은 “이미 과거 법적 판단이 끝났던 사건”이라면서 “시선RDI가 시선바로세움에 갚아야 하는 채무가 어음과 별개로 존재했고, 시선RDI가 직접(분양 수익 등으로) 그것을 상환하지 못했기 때문에 약정에 따라 두산중공업이 정당하게 대위변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재심이나 고소가 받아들여진다면 법정에서 시선RDI 와 두산중공업, 한국자산신탁, 하나은행 간에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혁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