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학봉 기자의 ‘팬데믹 주택 버블’ 연구 - ⑨주택난 극복위해 고밀도 개발요구하는 미국 시민운동
“민주당이 단독주택 전용 주거지역을 폐지하려 한다. 당신들의 거주지역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가 만든 공정주택 규칙을 폐지하면 집값은 올라가고 범죄는 줄어들 것이다.”
“내가 교외 주거지역의 아메리칸 드림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작년 7월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교외 단독주택 전용 주거지역 ‘의 유지를 선거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2015년 지방정부가 모든 인종을 위한 공정한 주택공급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는 ‘공정 주택 규칙’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공정 주택 규칙은 교외주거지역의 단독주택 전용주거지역의 규제를 완화해 좀더 저렴한 주택의 공급을 촉진하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트럼프는 왜 이 문제를 선거쟁점화 했을까.
◇아메리칸 드림 단독주택이 집값 급등의 주범?
미국 대부분의 교외주거지역은 ‘지역지구제’(Zoning)에 의해 단독주택만 짓도록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선 단층 주택과 넓은 정원은 이른바 중산층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다.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는 최소 대지 면적까지 까다롭게 규제한다.
하지만 이런 규제가 저렴한 주택공급을 가로막아 집값을 폭등시킨 주범이며 인종적 차별주의적 규제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가구 주택이나 아파트를 짓도록 허용할 경우, 저소득층 흑인과 스페인계 등 유색 인종들의 교외주거지역 입주가 늘어난다. 20세기 들어서도 상당기간 일부 지역 교외주거지역에서는 유색인종의 토지 취득을 금지했다. 지역지구제 자체가 서부 개척시대 철도 노동자로 이주한 중국인들이 백인거주지역 에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된 제도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도 트럼프는 유색인종이 교외주거 지역에 대거 이주할 경우, 범죄율이 높아지고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선동한 것이다. 민주당은 저소득층의 교외주거지역 입주는 사회통합을 촉진하고 저소득층 자녀가 중산층 자녀가 주로 다니는 학교를 이용할 수 있어 학력 상승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효과적인 빈곤층 퇴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쇼셜믹스(Social Mix)의 논리이다.
트럼프는 작년 7월 여론조사에서 크게 밀리자 공정주택규칙의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이든 후보와의 차별성을 높이기 위해 폐지를 선언한 것이다. 인종차별적 정책을 선거에 노골적으로 활용한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다른 이슈들이 많아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공정주택문제는 미 연방정부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지만,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개혁과제’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교외주거지역에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면 기존 주택 소유자들의 자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자치단체들이 공정주택 규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미국의 단독주택 전용 주거지역은 녹지보전과 저밀도 친환경개발이라는 대의명분도 갖고 있다.
◇”맹목적 친환경·녹지확보가 중산층 이기주의와 결합, 주택공급 막아”
미국의 지역지구제 논쟁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에서는 개발주의시대 성장 우선 정책의 반작용으로 저밀도 개발과 녹지 확보는 친환경이며 사회 정의로 통한다. 누구도 비판하기 쉽지 않은 절대 선에 가깝다. 박원순 서울시와 문재인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강화한 것은 저밀도, 녹지 보전 등 친환경을 도시 정책의 기본 틀로 삼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지나친 규제라는 비판이 나오듯 미국에서도 맹목적 환경주의가 결국 집값 폭등을 초래했다는 논리가 확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 기자 코너 도허티(Conor Dougherty)는 ‘골든게이츠, 미국에서 집을 향한 싸움’이라는 저서를 통해 환경을 명분으로 한 시민운동이 중산층·지역이기주의와 결합, 주택 규제강화와 집값 급등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택위기의 원인 중 하나는 1950년대에 시작된 샌프란시스코의 고속도로 건설 반대운동에서 시작된다.
당시 풀뿌리 시민 운동가들이 도시를 관통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저지시켰다. 이 운동의 성공은 캘리포니아의 ‘성장 지향 철학’에 도전한 ‘반 성장(anti growth) 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반성장운동은 캘리포니아의 환경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본격화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스프롤 현상'을 중지시키려는 좋은 의도는 곧 모든 것을 멈추게 하였다고 도허티는 주장한다.
스프롤 현상(Urban Sprawl)은 도시의 급격한 확장으로 교외가 무계획·무질서적으로 팽창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도시계획에서 스프롤은 과밀화, 교통혼잡, 녹지파괴를 초래하기 때문에 무조건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 절대 명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집값의 지나친 급등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스프롤을 차단하기 위한 저밀도 개발의 득과 실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스프롤 차단에만 몰두하다 토지의 적절한 활용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환경 품질법은 일반 시민에게 해안토지 구획과 녹지대에 주택 건설 사업을 모두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토지이용과 계획권한이 지역시민단체에 전가되자 시 당국은 기존 도시경관을 마치 오래된 숲처럼 보존하기 위해 토지 규제를 더욱 강화했고 결국 주택공급 감소와 집값 급등으로 이어졌다고 도허티는 주장한다.
◇환경과 역사적 건물 보호를 명분으로 자산 지키는 님비
코너 도허티만의 주장은 아니다. 미국, 캐나다 등에서 ‘임비(YIMBY)’ 운동이라는 풀뿌리시민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임대료 등 집값 폭등에 분노한 젊은이들의 운동이다.
임비는 NIMBY(not in my back yard)의 반대 개념으로, ‘yes, in my back yard’의 약자이다. 미국에서 NIMBY는 흔히 공공의 이익은 되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에는 이익이 되지 않는 혐오시설을 반대하는 행동을 지칭한다. 보통 님비의 대상은 저소득층 임대아파트, 소각장 등이지만, 임비 입장에는 다가구·아파트 등을 짓는 고밀도 개발에 반대하는 것도 전형적인 님비현상이다.
임비는 한마디로 주거난 해결을 위해 집을 더 짓자는 운동이다. 개발에 반대하는 운동에 반대하는 운동이다.기존의 세입자 운동과 달리, 저소득층용 공공임대, 임대료 통제, 보조금 확대 등 저소득층 지원만을 정책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 이들은 입법을 통해 고밀도 개발과 인허가 간소화 등을 촉구한다. 자신의 주장에 동의하는 정치인들의 의회진출과 입법 활동에 적극적이다.
이 운동은 201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소냐 트라우스(Sonja Trauss)가 샌프란시스코만 지역 세입자 연맹(SFBARF)을 결성하면서 시작됐다. 고교 수학 교사였던 소냐가 제시한 주택위기 해결책은 “더 많은 집과 고층 건물”이다.
YIMBY는 님비에 비판적이다. 이들은 “님비는 자신의 주택 가치를 지키기 위해 환경적 보호, 역사적 건물의 보호, 지방자치단체의 지역지구제를 지렛대로 활용, 주택공급을 가로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임비에 대한 비판도 많다. 건설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반환경 단체라는 것이다. 고밀도 개발이 저렴한 주택 공급을 촉진시켜 임대료와 집값을 낮춘다는 주장도 검증된 바 없다고 반박한다.
◇미니애폴리스 등 고밀도 개발 입법화 확산
샌디에이고의 캐빈 폴크너 시장은 공화당 출신이지만 “님비의 도시에서 임비의 도시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고밀도 개발을 추진했다. 그는 환승 정류장 주변의 주차장 요건과 건물 높이 제한의 완화를 추진했다. 건물신축 비용을 늘리고 주택공급을 제한한다는 이유에서다.
미니애폴리스, 새크라멘토 등 미국의 일부 자치단체들이 단독주택 전용 지역지구에 다가구 주택을 짓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미네소타의 주 정부 수도인 미니애폴리스는 대도시 중 처음으로 ’2040년 도시계획'에 따라 지역지구제를 폐지했다. 미니애폴리스 주거지역의 70%가 단독주택 전용 주거지역이었다.
미니애폴리스는 단독주택 전용 거주지역의 철폐와 함께, 환승 교통정류장 주변에 3~6층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주차장 요건도 없애 주차장 설치 비용을 최소화했다. 새아파트 신축 시 가구의 10%를 저소득층을 위한 저렴 주택으로 짓도록 규정했다.
미니애폴리스의 새로운 도시계획이 시의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주택가격을 낮출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환경론자들에게는 고밀개발이 에너저 효율을 높이는 친환경개발이라고 설득했다. 아파트, 다가구 주택이 단독주택보다 에너지효율이 훨씬 높고, 환승정류장을 중심으로 고층·고밀도 개발하면 자동차 사용을 줄여 탄소배출도 감축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