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집값 버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주택시장 과열의 원인은 역설적으로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때문이다. 각국에서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부양책을 쏟아내자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며 집값 과열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재택근무 유행으로 교외 단독주택 등으로 이사를 가려는 수요가 많아진 것도 집값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 시각) “전 세계적으로 집값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며 “거품 우려가 커지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가 주택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글로벌 집값 과열, “지속 불가능” 경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기준 OECD 국가의 평균 집값은 1년 전보다 5% 올랐다. WSJ는 “최근 20년간 가장 빠른 속도”라고 했다. 독일(8.1%)이 가장 많이 올랐고 네덜란드(7.4%)·스위스(6.1%)·덴마크(5.0%) 등 유럽 국가에서 상승 폭이 두드러졌다. 미국(6.8%)과 캐나다(5.0%)도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한국(3.1%)은 평균을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지방의 단독주택, 빌라 등 모든 주택 유형이 포함된 수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값 상승률은 7.57%로, 9년 만에 최대 폭으로 올랐다.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시 집값은 지난 1년간 16% 뛰었다. 중국에서는 “부동산이 배추보다 팔기 쉽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집값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한 호주 시드니에선 은행들이 급증한 주택담보대출을 처리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뉴질랜드 역시 지난달 주택 중위 가격이 1년 전보다 23% 급등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부 나라에서는 기록적인 집값 상승에 대한 ‘경고음'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집값 상승세를 억제하기 위해 최근 투자 목적의 구매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주택 거품에 대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자금 조달 비용이 과거보다 낮아진 것이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보고서를 내고 “연 5~10%의 집값 상승은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마이너스 금리까지… 넘치는 유동성
전 세계 집값을 끌어올리는 것은 넘치는 유동성이다. 유럽은 대부분 국가가 1%대 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한다. 포르투갈 등 일부 국가에는 마이너스 주택담보대출까지 등장했다. 덴마크 역시 은행에 내는 수수료를 제외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 상태다. 미국은 지난해 초 3.7% 수준이었던 30년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이율이 한때 2.95%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급여 보조나 대출 상환 유예 등 경기 부양책도 계속되고 있다. 스페인과 일본은 대출 상환을 연기해주는 제도를 도입했고, 네덜란드는 대출 연체에도 담보로 잡힌 주택을 압류하지 못하게 했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교외 주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도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신용평가사 S&P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집값이 많이 오른 지역은 교외 주택 단지가 발달한 애리조나주 피닉스(14.4%), 워싱턴주 시애틀(13.6%),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13.0%) 등이다. 미국 온라인 부동산업체 질로의 리치 바튼 대표는 “코로나로 집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교외 단독주택이나 중대형 주택 수요가 늘었다”고 말했다.
다만 각국은 최근 집값 과열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주택시장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당시보다 채무자들의 신용 상태를 꼼꼼히 따져 돈을 빌려주고 있고, 집을 사는 사람도 투자자보다는 실수요자가 많다”고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