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14년 만에 최대 폭(전국 평균 19.1%)으로 오른 가운데, 제주도와 서울 서초구가 “공시가격 산정이 잘못됐다”며 전면 재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두 지자체는 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공시가격 산정 근거 공개와 전면 재조사, 공시가격 결정권의 지방자치단체 이양 등을 정부에 요청했다.
제주도와 서초구는 자체적으로 검증단을 꾸려 관내 모든 공동주택의 2년치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격 등을 전수 조사해 구체적인 오류 사례를 공개했다. 제주시 아라동에서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서 특정 라인은 1층부터 13층까지 공시가격이 작년보다 6.8~7.4% 올랐는데, 옆 라인은 층별로 11~11.5% 내린 사례가 나왔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도 공동주택 7채 중 1채인 2만1226가구에서 공시가격 오류가 발견됐고, 소형 저가 주택 등 서민 주택일수록 오류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서초구는 “지난해 실제 거래가 있었던 4284건을 조사한 결과, 136가구의 공시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더 높게 산정됐다”며 “서초구 전체 공동주택(12만5294가구)에 적용하면 총 3758가구가 현실화율 100%를 넘은 셈”이라고 했다. 서초동 C아파트(전용 80㎡)는 작년 실거래가가 12억6000만원이었는데, 올해 공시가격은 15억3800만원으로 나왔다. 임대 아파트 공시가격이 인근 같은 면적 분양 아파트보다 비싼 사례,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어떤 동(棟)은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이 되고 옆 동은 포함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종부세 등 부동산 관련 각종 세금과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수급자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데이터로 쓰인다. 그러나 올해 공시가격 상승률이 지나치게 높은 데다가 정부가 정확한 산정 근거도 밝히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주도와 서초구처럼 지자체가 나서지 않더라도 개별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이의 신청을 위한 집단 행동에 나서며 ‘조세저항운동’으로 비화할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국토부와 한국부동산원이 모든 정보를 쥐고, 공시가격 산정 근거조차 제시하지 않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평형 등 특성이 다른 주택을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특정 실거래 가격은 공시가격 산정 기준이 되는 시세가 아니다”라며 “제주도와 서초구의 공시가격은 적정하게 산정됐다”고 반박했다.
아파트 같은 동인데… 공시가, 2호 라인은 -11% 4호 라인은 +7%
제주도 제주시 아라동의 A아파트는 올해 한 동(棟)은 1층부터 5층까지 전 가구의 공시가격이 최고 13.7% 올랐다. 그러나 나머지 세 동 전체 가구는 모두 작년보다 공시가격이 내렸다. 아파트 단지별로 조망 등에 따라 시세나 공시가격이 차이가 나지만, 몇 층이냐에 상관없이 한쪽 동은 오르고, 다른 동은 내리는 건 이례적이다.
제주도와 서울 서초구는 5일 자체 조사한 관내 공동주택 공시가격 오류 사례를 공개하면서 올해 공시가격 전면 재조사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매년 공시가격이 크게 오르는 상황에서 ‘깜깜이 산정’ 논란이 계속되자 지자체가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에 나선 것이다.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보다 높아
제주시 아라동 B아파트에선 이해할 수 없는 공시가격이 매겨졌다. 같은 동에서 2호 라인 집들은 작년보다 11.0~11.5% 내렸지만, 옆의 4호 라인은 집마다 6.8~7.4%가 올랐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4호 라인인 33평형은 지난해 실거래가와 시세가 올랐고, 2호 라인의 52평형은 하락한 것을 반영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토부가 52평형 공시가 산정 때 참고로 삼은 실거래가는 작년 7건의 거래 중 가장 낮은 가격이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일부 동은 공시가격이 30% 오르고, 다른 동은 전혀 오르지 않은 곳도 있었다. 정수연 한국감정평가학회장(제주대 교수)은 “각 가구의 공시가격이 다를 수는 있지만, 특정 라인이나 동에서만 가격이 오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훼미리 아파트 102동은 공시가가 작년보다 29.5% 오른 9억6700만원으로 종합부동산세 대상이 됐다. 반면 바로 옆 동인 101동은 14.9% 올라 공시가격이 8억800만원에 그쳤다.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보다 비싼 경우도 있었다. 작년 준공된 서초동 C아파트 전용면적 80㎡의 작년 실거래가는 12억6000만원이었는데, 공시가격은 15억3800만원으로 책정됐다.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의 공시가가 역전된 사례도 있었다. 서초구 우면동의 토지임대부 아파트인 LH서초5단지 아파트의 올해 공시가격은 10억1600만원이었다. 반면 분양 아파트인 인근 서초힐스의 같은 면적 공시가격은 9억8200만원이었다. 작년엔 서초힐스 공시가가 더 높았는데, 올해 LH서초5단지 공시가가 53.9%나 오르면서 가격이 역전된 것이다.
서초구청에 따르면 지난해 거래된 4000여 가구 중 정부가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한 현실화율(시세 반영률 90%)을 이미 넘어선 집이 209가구로 약 5%를 차지했다. 조은희 구청장은 “이런 사례를 서초구 전체로 확대하면 3758가구가 현실화율 100%를 넘겼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특정 실거래 가격이 공시가격 산정 기준이 되는 게 아니다”라며 “해당 단지의 적정 시세를 따지면 현실화율은 70~80%대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서울 아파트 4채 중 1채는 종부세 대상
공시가격은 종부세·재산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과 건강보험료, 노인기초연금 수급자 등을 결정하는 행정지표로 쓰인다. 조 구청장은 “공시가격 인상으로 서초구에서 소득이 없는 어르신 105명이 기초연금 대상에서 탈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공시가격 급등으로 서울 아파트 4가구 중 1가구가 종부세 과세 대상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 공시가격이 9억원 이상인 아파트는 총 40만6167가구로 전체 아파트(168만864가구)의 24.2%였다. 공시가격 9억원을 넘으면 1가구 1주택 기준 종부세 부과 대상이다.
올해 서울 내 공시가 9억원 이상 아파트는 작년(27만5959가구)보다 12만여 가구 늘어나 상승률이 47.2%에 달했다. 김 의원은 “상위 1%가 내는 세금이라던 종부세가 현 정부 들어 ‘중산층세’로 변질했다”며 “종부세 과세 기준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