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월 중 공개한다고 예고했던 수도권 11만 가구 포함, 전국 13만1000가구 규모의 신규 공공택지 발표를 돌연 연기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며 강행 의지를 보였는데, 상황이 돌변한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19일 “일부 후보지에서 사전 투기로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돼, 정밀 조사와 경찰 수사 등 실태 파악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투기 혐의가 입증되면 일부 지역이 후보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7만 가구 규모 광명·시흥지구도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후속 조치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2·4 대책’ 중 가장 공급 효과가 높은 방안으로 평가받던 수도권 신규 개발 일정이 지연되면서 정부가 계획한 공공 주도 주택공급 확대 정책의 추진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투기 의혹에 발목 잡힌 공급 대책

국토부는 이날 ‘위클리 주택공급 브리핑’에서 소규모 정비사업과 세종, 울산, 대전 등에 총 5만2000가구를 추가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가장 관심을 끌었던 수도권 대규모 공공택지는 발표 내용에 없었다. 정부는 앞서 2·4 대책을 통해 수도권 18만 가구를 포함해 전국에 25만 가구를 공급할 수 있는 공공택지를 발굴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2월 24일 광명·시흥 7만 가구 등 10만1000가구 공급 계획을 1차로 발표했고, 나머지 14만9000가구의 입지는 4월 중 발표한다는 계획이었다.

3월 초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가 터지자 정부가 약속한 공급 대책이 차질을 빚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에 홍남기 부총리는 21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4월 말 추가 신규 택지 발표 등 2·4 대책 후속 절차를 속도감 있게 진행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애초 계획했던 신규 공공택지 14만9000가구 중 수도권은 모두 빠지고 울산 선바위(1만5000가구), 대전 상서(3000가구) 등 1만8000가구만 발표했다.

김수상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후보지는 모두 발굴했지만 일부 지역에서 거래량이 급증하거나 외지인 거래, 지분 거래(지분 쪼개기)의 비중이 높아진 정황이 확인됐다”며 “(후보지) 발표보다는 철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투기 의심 지역에 대해 자체적으로 정밀 조사를 하고 경찰 수사도 요청할 계획이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추가 택지 후보지에서도 투기 의혹이 나오면서 정부의 주택 공급 일정이 늦어지고 규모도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도심 자투리땅 긁어모아 2만1000가구 공급

한편 정부는 서울 금천구 시흥3동 등 20곳을 ‘소규모 주택정비 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이 지역들에서 1만7040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대규모 정비가 어려운 저층 주거지를 소규모(10만㎡ 미만)로 정비하는 방식으로, 건축 규제 완화와 사업비 지원 같은 혜택이 제공된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인천 미추홀구 숭의2동 등 7곳은 ‘주거재생혁신지구’로 지정해 총 3700가구를 공급할 방침이다. 주거재생혁신지구 역시 건축 규제 완화, 공공시설 설치비용 지원 같은 혜택을 준다.

소규모 주택정비 관리지역과 주거재생혁신지구 모두 2·4 대책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공급 정책이다. 사업지들이 주로 도심에 있어 입지 여건은 우수하지만, 대부분 1000가구 미만으로 개발되는 데다, 기존 주민들이 우선적으로 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주택 순증(純增) 효과는 크지 않다는 평가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굵직한 공공택지 발굴이 자꾸 밀리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주택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