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경기도 평택의 ‘e편한세상’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 LH(한국토지주택공사) 주택성능개발연구센터 소속 직원이 인테리어만 남은 아파트 내부에서 대형 타이어를 바닥에 내리치며 층간 소음을 측정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바닥 구조만 따로 만들어 별도의 시험실에서 층간 소음 정도를 측정했는데, 처음으로 실제 아파트 내부에서 측정해 합격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하면서 이웃 간 층간 소음 분쟁이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지난해 층간 소음 관련 상담이 4만2250건으로 1년 전(2만6257건)보다 61%나 늘었다. 이 때문에 대형 건설사마다 경쟁적으로 층간 소음을 줄이는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 층간 소음을 측정하는 시점이 ‘집 짓기 전’에서 ‘집 지은 후’로 바뀌는 것도 건설사 간 기술 개발 경쟁에 불을 붙였다.

지난 5월 입주를 앞둔 경기도의 한 '힐스테이트' 아파트에서 진행된 층간 소음 측정 실험. 내년부터 아파트를 지은 후 실제 집에서 층간 소음 차단 성능을 확인하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건설사들이 전담 연구팀을 만들고 특허를 내는 등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대건설

◇내년부턴 집 다 짓고 층간 소음 측정

정부는 현재 층간 소음에 대해 ‘사전인정제’를 운영하고 있다. 아파트 준공 전 바닥 구조를 미리 평가하고, 설계대로 지으면 층간 소음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하지만 정부 기준을 통과한 아파트에서 실제 입주 후 층간 소음이 심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감사원이 2019년 입주를 앞둔 28개 단지, 191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봤더니 96%(184가구)가 사전에 인정받은 성능보다 등급이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114가구는 최소 성능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작년 6월 집을 다 지은 후에 층간 소음을 측정하겠다는 개선안을 내놨다. 준공 후 층간 소음 기준에 미달하면 건설사는 보완 시공을 해야 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관련법 개정을 거쳐 내년 하반기부터는 사후 확인제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층간소음 관련 상담 접수, 아파트 시공 후 층간소음 측정 결과, 층간소음 줄이기에 투자 늘리는 건설사들

◇전담팀 만들고 실험용 건물도 지어

층간 소음 사후 확인제 도입이 임박하면서 올 들어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층간 소음을 줄이는 기술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DL이앤씨와 현대건설은 층간 소음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해 입주를 앞둔 아파트 현장에서 성능을 측정했다. 삼성물산은 7월 초 층간 소음을 측정하기 위한 전용 연구 건물을 착공했다. 포스코건설과 롯데건설도 전담 연구팀을 새로 꾸렸다.

건설업계는 특히 중량(重量)충격음을 줄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중량충격음은 뒤꿈치로 바닥을 찍는 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등으로 층간 소음 분쟁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보통 바닥 슬래브 두께를 늘릴수록 이 충격음이 줄어든다. 삼성물산은 지난 3월 특정 부문의 바닥 슬래브 두께를 법적 기준치(210㎜) 이상인 250㎜까지 높이는 기술을 특허 냈고, SK에코플랜트 역시 바닥 슬래브 두께를 기존보다 90㎜ 높인 바닥 구조를 개발했다.

◇벽식 구조 한계, 비용 상승 지적도

사후 인증제가 적용돼도 이미 지어진 집을 얼마나 더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토부가 발표한 내용대로라면 보완 공사는 강제가 아닌 권고 사항이다. 양관섭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건설사가 시공 과정에서 더 공을 들이긴 하겠지만 이미 집을 다 짓고 난 후 추가 시공을 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근본적으로 슬래브 두께 기준을 높이고 기둥식 구조로 집을 지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지영 LH 연구위원은 “기둥식 구조와 비교하면 벽식 구조에서 윗집의 소음이 벽을 타고 아래로 전달되는 정도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슬래브 두께를 높이거나 기둥식으로 짓는 방식 모두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아파트 분양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동주택에서 층간 소음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 만큼 입주민 간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