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가 작년의 4배입니다. 세입자에게 월세를 45만원에서 90만원으로 올린다고 통보했습니다.”
“1800만원 종부세 고지서 확인하니까 월세 올리는 게 전혀 고민이 안 되네요.”
25일 한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1년 만에 급등한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월세 인상으로 충당하겠다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한 회원이 올린 ‘종부세 전액을 세입자에게 전가할 것인가?’라는 설문에는 250여 명이 응답했는데, 80% 넘게 ‘그렇다’고 답했다.
올해 종합부동산세 대상자와 세액이 대폭 증가한 가운데 다주택자들이 세금 부담을 세입자에게 떠넘길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아파트 공시가격 상승률(전국 평균 19.1%)이 작년보다 3배가 넘는 상황에서 재산세(7·9월 납부)에 이어 종부세 폭탄까지 맞은 다주택자들이 전셋집을 월세로 돌리거나 월세를 더 올리는 상황이다. 정부는 “전세 매물이 증가하고, 전·월세 가격 상승이 둔화하고 있어 조세 전가는 제한적”이라고 강조하지만, 시장 현실과 동떨어진 시각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선 전세 보증금을 올리는 대신 월세를 추가로 받는 거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 중 보증금 규모가 가장 큰 준전세는 올해 2만6000건을 돌파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보증금에 월세까지 받는 거래가 전체 임대차 계약의 40%에 육박할 정도로 늘었고, 일부 지역에선 전세 거래량을 추월하기도 했다.
가격도 강세다.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89만3000원에서 지난달 123만4000원으로 38.1% 올랐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과도한 종부세 인상에 다주택자가 집을 처분하기보다는 세입자에게 조세 부담을 떠넘기면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24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종부세 때문에 전·월세가 오를 것이라는 우려는 너무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주택 시장에서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하는 데엔 보유세 부담이 급증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연간 재산세와 종부세가 수백만~수천만원에 달하면서 ‘집 있다고 나라에 월세 낸다’는 불만이 커졌고, 세입자를 상대로 전세 보증금을 올리는 대신 월세를 받으려는 집주인이 늘었다. 대출로 수억원대 보증금을 마련하고 매달 월세까지 지출하는 세입자들은 가처분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올 들어 서울 아파트 준전세 거래는 2만6011건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가장 많다. 11월 거래도 다 집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년 연간 거래량(2만5730건)을 추월했다. 월세를 낀 임대차 거래는 보증금 규모가 몇 달치 월세냐에 따라 월세(12개월 미만), 준월세(12개월~240개월), 준전세(240개월 초과)로 나뉜다. 월세 100만원을 기준으로 보증금이 2억4000만원을 넘으면 준전세로 분류된다. 준전세 거래가 늘었다는 것은 수억원대 전세 보증금에다 월세까지 내는 세입자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또 전체 임대차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30.8%에서 올해 36.4%로 올랐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84㎡는 지난 9월 보증금 9억원에 월세 145만원에 계약됐다. 2년 전 계약 조건은 전세 8억9000만원이었는데 집주인이 전세를 시세(14억원대)만큼 올리는 대신 월세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래미안허브리츠’ 전용 84㎡도 2년 전 5억원짜리 전셋집이 올해는 보증금 5억원에 월세 80만원으로 전환됐다. 서울 성동구의 한 공인 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차법 때문에 전세 갱신 계약을 한 집주인 대부분이 ‘다음 세입자는 월세로 받을 것’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보유세의 가파른 인상은 결국 무주택자인 세입자 피해로 돌아간다고 지적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최근 집값·전셋값 상승 폭이 줄었지만, 서울 아파트처럼 임차 수요가 많은 지역은 여전히 공급자인 집주인이 우위에 있다”며 “집주인은 보유세 부담을 덜어낼 궁리를 할 수밖에 없고, 결국 무주택자의 월세 지출만 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