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불광동 B아파트 전용면적 59㎡(8층)가 지난 9일 8억1000만원에 팔렸다. 7월 같은 면적 7층 매물의 실거래가(8억6000만원)보다 5000만원 내린 금액이다. 대구 수성구 수성동 W아파트 전용 59㎡는 이달 초 2억345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8월과 9월 거래된 실거래가(3억3500만~3억5000만원)와 비교하면 1억원 넘게 내렸다.
전국 아파트 시장에서 매매가격 하락 반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대출 규제 강화와 금리 인상으로 아파트 매수 수요가 줄어든 데다가 내년 대선 결과를 보고 집을 사든지 팔든지 결정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거래 급감에 매물이 쌓이고, 호가(呼價)를 대폭 낮춘 급매물만 간간이 팔리면서 전국에서 아파트값이 내리는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 강북 지역 아파트 매수세 끊겨”
30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값 동향에 따르면, 이번 주 전국 아파트값 상승률은 전주(前週)보다 0.02%포인트 줄어든 0.05%를 기록했다. 작년 5월 11일 조사(0.04%) 이후 1년 7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경북(0.09%)을 뺀 모든 시도가 1주일 전보다 상승 폭이 줄었고, 세종(-0.63%)과 대구(-0.04%)는 하락 폭이 더 커졌다.
서울에선 일주일 사이 아파트값이 하락 반전한 구(區)가 2곳 추가됐다. 은평구(-0.02%)가 2주째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한 가운데, 강북구(-0.02%)와 도봉구(-0.01%)가 1년 7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부동산원은 “서울 강북 대부분 지역에서 아파트 매수세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아직 신고 기간이 한 달 남아있지만, 12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493건으로 작년 12월(7545건)보다 무려 93% 줄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8년 11월(1163건) 기록한 역대 최저 거래량을 갈아치울 가능성이 크다.
3기 신도시 추가 지정,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추진 등의 호재로 올해 과열 조짐을 보이던 경기도에서도 아파트값이 내린 지역이 늘고 있다. 올해 누적 상승률 38.5%로 전국에서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오른 의왕은 이번 주 보합(0%)을 기록했고, 상승률 2위(37.2%) 시흥은 지난주보다 0.04% 떨어졌다. 시흥은 상반기만 하더라도 아파트값이 매주 1% 안팎으로 뛰었지만, 최근엔 배곧·정왕동 등에서 매수세가 끊기고 매물이 쌓이고 있다.
◇대구 수성, 대전 유성도 하락세로
지방 대도시에서도 아파트값 하락세가 확산하면서 주택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이번 주 부산 아파트값은 올해 가장 낮은 상승률(0.03%)을 기록했고, 1월 이후 처음으로 아파트값이 내린 지역이 등장했다. 동구가 지난주보다 0.07% 내렸고, 영도구(-0.02%)와 강서구(-0.01%)도 하락 전환했다.
올해 지방 시·도 중 제주(20.1%) 다음으로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오른(14.3%) 대전에서는 유성(-0.03%)·서구(-0.01%) 아파트값이 내렸다. 대전 유성구 아파트값이 내린 것은 2018년 7월 이후 3년 5개월 만이다. 대구는 ‘대구의 강남’으로 꼽히는 수성구(-0.02%)마저 하락세로 바뀌면서 8개 구·군 지역의 아파트값이 모두 떨어졌다.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여 있는 전남 여수와 광양도 일주일 전보다 아파트값이 내렸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전국적으로 연초 대비 아파트값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대선이라는 불확실성 때문에 당장 아파트를 사겠다는 수요가 급감했다”며 “서울과 수도권 인기 지역도 거래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 당분간 약보합세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