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19일 뉴질랜드 집권 여당인 노동당 소속 메간 우즈 주택부 장관과 야당인 국민당의 주디스 콜린스 대표와 기자회견장에 함께 등장했다. 이들은 10년내에 최대 10만5500채의 신규 주택 건설을 가능하게 하는 법률 개정안을 여야가 공동으로 발의한다고 발표했다. 정권 쟁탈전을 벌이는 여·야가 손을 맞잡는 것은 뉴질랜드에서도 이례적이다. 현지 언론은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여야의 역사적 정치 휴전’이라고 평가했다.
◇”주택 부족, 젊은이의 희망 빼앗고 있다”
이들이 발표한 내용은 규제완화를 통한 주택공급확대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용적률과 층고제한을 완화, 주택을 더 짓게 하도록 하기 위해 자원환경관리법(Resource Management Act)을 개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여야 참석자들은 “심각한 주택 부족을 겪고 있으면서도 충분한 주택을 짓지 못했다”면서 “뉴질랜드의 가장 가난하고, 취약하고, 어린 세대들을 어렵게했다”고 반성했다. 이들은 “부동산 사다리가 너무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주택 부족은 불평등을 부추기고 젊은이들의 희망을 빼앗고 있다”, “도시계획 규정이 집을 짓는 것을 더 어렵게 하고, 더 비싸게 만든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했다.
초당적 법률 개정은 주디스 콜린스 국민당 대표가 작년 1월 저신다 아던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환경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녹색당도 젊은층의 고통을 의식, 법 개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택 더 짓자 여야 법률개정
1991년 환경보전을 위해 도입된 자원환경관리법은 주요 도시 주거지역에 대해 대지당 1가구, 2층 건물로 제한한다. 이보다 더 큰 건물을 지으려면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개정안은 2022년 8월부터 대부분의 기존 주거지역에 토지 소유자가 정부의 허가나 지역주민들의 동의 없이 부지면적 50%까지 최대 3층 높이로 3가구의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중밀도 주거기준’을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단독주택만 있던 지역에 타운하우스 건축이 원칙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다.
이번에 개정된 자원환경관리법은 주택건설 등에 지역주민 동의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부과하고 최종 이용 승인을 해당 지방정부로부터 받도록 의무화한 제도이다. 문제는 주민동의 등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주택건설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뉴질랜드 정부조차 보고서를 통해 “자원관리법의 승인 관련 불확실성과 인허가 기간 지연 등으로 10년간 업체들이 4만 가구의 주택 건설계획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뉴질랜드 정부는 지난 2019년 주택 10만 채를 공급하겠다며 ‘키위빌드’ 사업을 발표했지만, 흐지부지 됐다. 자원환경관리법 탓에 주택추가 공급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돼도 정책 지속 여야가 확약
고밀도 개발은 지역 주민에게 인기가 없다. 인근에 3층 집이 들어서 조망권을 가릴 수 있고 집값하락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당이 이 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의원들이 지역주민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게하고 다음 선거에서 어느 당이 승리하더라도 정책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인허가 문제로 주택사업참여를 꺼리던 건설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사업에 나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집값이 폭등하면서 우파 국민당과 좌파 노동당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주택투기를 겨냥해 양도소득세, 주거용 주택에 대한 외국인 투자 금지, 주택개발 촉진 정책 등 수요와 공급 측면의 각종 정책이 나왔다. 그럴 때마다 국민당과 노동당은 서로 발목을 잡았다. 법안은 작년 12월 초당적 지지로 통과됐다.
◇토지 널려 있는데도, 세계 주택거품 1위, OECD 노숙자 1위 국가 뉴질랜드
블룸버그통신 산하 경제연구소 블룸버그 이코노믹스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결제은행(BIS)의 자료를 토대로 나라별 주택시장 거품 순위를 평가한 결과, 1위가 뉴질랜드였다. 한국은 19위였다. 뉴질랜드 평균 주택가격은 2011년말 39만9466 뉴질랜드달러(3억2000만원)에서 작년말 100만6632 뉴질랜드 달러(8억680만원)로 올랐다. OECD 35개국중 노숙자 1위가 뉴질랜드라는 조사도 있다. 전국민의 1%가 노숙자라는 통계가 있다.
뉴질랜드는 국토면적이 한국보다 2.6배 정도 넓지만 인구는 500만명에 불과하다. 집 지을 땅이 널려 있는 나라에서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이유는 뭘까.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저금리로 주택 수요가 늘어난 것이 일차적 원인이다.
하지만 만성적인 주택공급 부족이 근본적 배경이다. 뉴질랜드의 주택 인허가는 인구 300만명대였던 1970년대에 연간 4만 가구였지만, 인구가 500만명 안팎으로 늘어났는데도 2만~3만 가구 수준이다. 리먼쇼크의 영향을 받았던 2009~2011년에는 1만4000 가구 수준으로 주택 인허가가 줄었고 2017년에야 3만 가구 수준을 회복했다. 1000명당 주택인허가가 1973년 13.2 가구에서 2011년 3.1 가구까지 급락했다. 2020년 집값 급등으로 인허가가 늘어났지만, 7.1 가구에 불과하다. 뉴질랜드 여야가 건축규제 완화에 합의한 것은 주택공급 확대 없이는 주택가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