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집값 상승에 따른 부담과 금리 인상으로 주택 수요가 줄어들면서 전국적으로 집값 하락세가 완연해지고 있다. 경기 의왕 등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호재로 지난해 집값이 급등한 지역에서 직전 최고가 대비 수억원씩 떨어진 가격에 계약이 체결되고 있으며, 인천 송도에서는 아파트 분양권의 시세가 억 단위로 떨어졌다. 서울도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 하락 폭이 커지는 추세다.

지방 역시 대구, 대전, 전남 등 최근 규제지역에서 제외된 곳을 중심으로 매수세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리 추가 인상 등 집값을 더 떨어뜨릴 요인이 많고,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도 높기 때문에 하반기에도 집값 하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방 주요 지역 아파트값 주간 변동률

◇매수세 실종에 집값 하락 가속도

8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번 주(4일 기준) 대구 아파트 값은 0.11% 하락했다. 전주(-0.19%)에 비해 낙폭이 줄었지만 여전히 세종(-0.14%)에 이어 전국 둘째로 집값 하락세가 가파르다. 대전(-0.06%), 전남(-0.07%)도 집값 하락이 이어졌다.

대구, 대전, 전남은 정부가 지난달 30일 규제 완화를 결정한 지역들이다. 대구는 수성구가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되면서 청약·대출·세금 등의 규제 수위가 한 단계 낮은 조정대상지역이 됐고, 나머지 7구는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돼 비규제지역이 됐다. 대전도 동·중·서·유성구 등 4곳이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됐고, 전남은 여수·순천·광양시 등 3곳이 조정대상지역에서 빠졌다. 이처럼 규제가 완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분위기는 여전히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대출 이자 부담과 주택 거래 침체로 투자 수요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규제가 풀려도 당장 집값이 오르긴 어렵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도 집값 하락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인천 송도에서는 ‘힐스테이트 송도 더스카이’ 등 청약 경쟁이 치열했던 아파트의 분양권이 직전 최고가보다 1억~2억원씩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GTX-C노선이 연결된다는 소식이 호재로 작용하며 작년 아파트 값 상승률 1위(38%)를 기록한 의왕에서는 아파트 전용면적 84㎡가 직전 최고가(16억3000만원)보다 4억원가량 내린 12억8300만원에 지난 5월 거래됐다. 서울 역시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은평구 등 외곽을 중심으로 집값 하락 폭이 커지고 있으며, 거주 수요가 가장 많은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도 서초구를 제외하고는 아파트 값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서울 아파트 수요도 9주째 감소

서울 아파트 값은 이번 주 0.03% 떨어지며 6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집값 선행 지표로 통하는 매매수급지수도 9주 연속 하락해 86.8을 기록했다. 2019년 7월 셋째 주(85.6) 이후 최저치다. 매매수급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아파트 공급에 비해 수요가 적고, 숫자가 작을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는 의미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 역시 이번 주 0.02% 떨어지며 4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원은 “높은 전셋값에 대한 부담과 전세 대출 금리 인상에 따른 월세 선호 현상이 지속되며 전세 수요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수요가 줄어든 탓에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아실 집계)은 이날 기준 2만9912건으로 한 달 전(2만6448건)에 비해 13% 급증했다. 전셋값이 하락하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매매가격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지금은 거의 모든 통계 지표에서 집값 하락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금리 등 거시경제 상황도 불안하기 때문에 거래 가뭄과 집값 하락은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