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매보다 더 급한 특급매매 -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업소에 ‘특급’ ‘빠른’ ‘추천’ 등의 수식어가 붙은 아파트 매물 정보가 게시돼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대출 금리도 가파르게 오르면서 최근 전국적으로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는 부동산 빙하기가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금리 인상 여파로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이번 주 아파트 값이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통계 집계 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집값의 선행 지표로 통하는 매매수급지수도 수도권 기준으로 10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급매물 위주로 거래되면서 아파트 실거래가도 직전 최고가 대비 20~30%씩 급락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연이은 빅 스텝(단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충격에 매수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매수심리 악화→집값 하락 폭 확대→매수심리 재악화’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집값·수급지수 동반 하락세

14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번 주 수도권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79.4로, 전주(80.0)보다 하락하며 80선을 밑돌았다. 수도권 매매수급지수가 80보다 낮아진 것은 2013년 4월 첫 주(77.2) 이후 9년 6개월 만이다. 매매수급지수는 집값의 선행 지표로 수치가 낮을수록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다. 지난달 세종을 제외한 전역이 규제지역에서 해제된 지방의 매매수급지수도 이번 주 87.6을 기록하며 전주(88.3)보다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큰 데다,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도 커 매매와 전세 시장 모두 약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0일 기준 아파트 값도 전국(-0.23%)과 수도권(-0.28%), 지방(-0.17%) 모두 2012년 5월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 값은 0.22% 하락하며 2012년 8월 넷째 주(-0.22%)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으며 경기(-0.3%), 인천(-0.38%)도 지난주보다 낙폭이 커졌다.

매매수급지수 추이
수도권 아파트 실거래가 하락 사례

직전 대비 실거래가가 수억원씩 떨어지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광교중흥에스클래스’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말 12억원에 거래돼 1년 전 최고가 대비 6억원 떨어졌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 ‘더샵송도마리나베이’ 전용 84㎡도 최고가(12억4500만원)의 절반 수준인 6억6000만원에 팔렸다.

전세 시장도 동반 약세다. 이번 주 전국(-0.25%), 수도권(-0.32%), 지방(-0.17%) 모두 전주(前週) 대비 전셋값 하락 폭이 커졌다. 특히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0.22% 내리며 2019년 2월 18일(-0.22%) 이후 3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대단지 아파트가 많은 서울 송파구는 일주일 사이 전셋값이 0.52% 급락했다.

◇전세도 동반 약세… “금리 진정돼야 회복될 것”

전세 시장의 경우 금리가 가파르게 올라 전세대출 이자보다 월세가 싸지면서 전세 매물이 쌓이고 가격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4만4638건으로 한 달 전(3만5951건)보다 24% 늘었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통상 월세는 은행 이자보다 비싼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에는 대출 금리가 워낙 가파르게 오른 탓에 월세가 더 저렴해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지난 정부에서 단기간 급등하며 과열됐던 부동산 시장이 금리라는 암초를 만나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며 “앞으로 금리 인상 랠리가 마무리됐다는 신호가 나타나야 거래가 회복되면서 집값 하락세도 진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합수 건국대 교수는 “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면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을 당장 멈출 수 없다고 해도 금융기관들이 대출 가산금리를 과도하게 책정하는 경우는 없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