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게 불을 밝힌 엘시티 건물. 오른쪽 가장 높은 건물이 호텔과 레지던스로 구성된 엘시티 랜드마크타워동이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9월 28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은 서늘한 가을 기운에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여름의 문턱을 넘은 계절이지만 백사장 옆 현대식 건물에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곳곳에는 버스킹도 하고 있다.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건물로 시선을 따라가 보면 눈에 띄는 건물이 용솟음치듯 하늘 위로 뻗어 있다. 초고층 건물인 엘시티다. 세 개 동 중 두 곳은 국내 최고층인 84층 아파트이고 유독 높은 랜드마크타워동은 101층 마천루다.

아파트 두 개 동과 달리 101층 랜드마크타워동은 19층까지는 5성급 호텔이고 그 위로는 생활형 숙박시설(생숙)인 레지던스 561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전국 9만여 가구인 생숙의 대장격이다. 박모(59)씨는 2020년 이곳 레지던스를 20억원대에 구입했다. 박씨는 당시 공인중개사가 주거 편의성만 놓고 보면 한국에서 이만한 곳이 없다고 강조했다고 기억했다. “골프연습장도 잘돼 있고 사우나에는 온천수가 나온다고 했다. 피트니스 시설도 훌륭하고 컨시어지 서비스도 좋다고 했다. 레지던스동이 바다 조망권도 더 좋아서 대부분 주인이 실거주한다고 했다. 집 여러 채 가진 사람도 다 세 주고 여기서 산다더라. 주택 수에도 포함 안 되니 세금 문제도 없는 게 장점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박씨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를 세 주고 이곳으로 이사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이곳은 말 그대로 생활형 숙박시설이다. 주거와 숙박이 공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난 2021년 정부에서 갑자기 이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단속을 2년간 유예해줬지만 그 사이 숙박업 신고를 해서 본연의 용도대로 쓰거나 주거용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숙박시설이니 누군가가 아파트에 묵듯 주거용으로 쓰는 건 불법 용도변경에 해당한다.

숙박과 주거 뒤섞인 엘시티 레지던스

생숙의 시작은 부족한 숙박업의 현실과 맞물렸다. 2010년경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그들이 머물 숙박 장소가 더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다. 그래서 분양 형식으로 돈을 끌어다가 숙박 시설을 지어서 관광객들을 위해 활용하자며 레지던스가 곳곳에 지어졌다. 특히 장기 체류자를 위해 호텔식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드 레지던스’는 지금 문제가 된 생숙의 모태에 가깝다.

해운대 바닷가가 보이는 자리마다 생숙이 가득 들어찬 건 이런 분위기와 맞물렸다. 바다가 보이는, 누가 봐도 조망이 훌륭한 괜찮은 땅은 대부분 상업용지라서 아파트를 짓지 못한다. 하지만 생숙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파트 같지만 아파트가 아닌 숙박시설이니 해변이 보이는 곳에 지어도, 옆건물이나 뒷건물을 가리더라도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매수자 입장에서도 주택으로 분류되지 않으니 종부세와 양도세 등이 부과되지 않고 청약통장도 필요치 않다. 경치 좋은 상업지구에 들어선 주거 시설로 홍보되고 분양됐고 엘시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9년 7월 준공된 엘시티 랜드마크타워동은 이런 주거와 숙박의 혼재된 공간이다. 누구도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용도를 구분짓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일도 있었다. 랜드마크타워동 안에 있는 레지던스 로비에 텐트가 깔리기도 했다. 엘시티 레지던스 투숙객을 위한 안내데스크를 설치하려 하자 실거주 주민들이 공용 공간을 일방적으로 사용한다며 막아선 것이다. 보금자리와 숙박공간이 뒤섞인 탓에 막상 수익을 위해 투자한 가구에서 손님맞이를 위한 시설을 설치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던 때 규제로 압박받던 주택시장 대신 투자 수요는 생숙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사각지대에 놓인 이 틈새시장으로 돈이 몰렸고 부동산 활황기가 겹치자 생숙의 몸값은 치솟았다. 엘시티도 그랬다. 분양가 14억원의 전용면적 113.5㎡가 2021년에는 26억원에 거래되며 두 배가량 뛰었다. 정부 정책의 빈틈을 노려 단기 차익만 먹고 나온 사람이 사실상 승자였다.

지난 9월 19일 생활형 숙박시설 소유주와 거주자들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강제이행금 폐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위탁업체에 맡긴 뒤 장기거주하는 편법

이처럼 광풍이 부는 생숙이 주택과 달리 법적 규제를 받지 않자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문재인 정부는 2021년 4월 용도변경을 하지 않는 주거 가구에 매년 공시가격의 10%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다만 국토부는 기존 생숙 분양단지가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을 할 수 있도록 2년간 이행강제금 부과를 유예했다.

엘시티 랜드마크타워동도 여기에 해당했다. 주민들도 어느 정도 동요했다. 박씨는 “그래도 정부가 바뀌었으니 내부 단톡방에서도 준주택으로 인정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미 여기서 사는 사람을 강제로 내쫓지는 못할 거라고 그러더라. 주택 공급이 부족한데 생숙을 그냥 놀리겠냐는 이야기도 많았다. 해운대구청에 문의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도 생숙을 준주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해운대에 몰려 있는 생숙들 중 합법적 용도변경 방안인 오피스텔 전환을 고민한 경우도 있었지만 성공사례는 거의 없다. 주차장을 늘려야 하고 소방법에 따라 복도 폭을 늘리는 등 구조 자체를 손대야 하는 곳이 대다수다. 해운대 생숙들 중 에이치스위트 내 소수 가구 정도가 사비를 들여 용도변경 승인을 받았다. 그 외 나머지 건물들은 사실상 새로 짓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다.

엘시티 랜드마크타워동은 오피스텔 전환이 불가능에 가깝다. 이 자리는 지구단위계획상 오피스텔 건립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결국 엘시티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이행강제금을 내는 것이다. 매년 공시가격의 10%를 내야 한다. 아니면 숙박업으로 운영하면 되지만 위탁업체에 수수료를 내고 맡겨야 한다. 엘시티 위탁업체 수수료는 해운대 다른 생숙보다 높은 편이다. 그렇다 보니 수익 면에서도 애매하다. 숙박업이 싫다면 매도하는 방법도 있지만 부동산 경기도 나쁘고 생숙에 대한 규제 탓에 매수자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박씨는 그냥 실거주를 할 생각이다. 주변의 경우를 보니 숙박업의 경우 수익이 생각보다 나지 않는 편이다. “계산해 보니 월 300만원가량의 대출금 이자를 겨우 갚을 수 있을 정도인 것 같다. 파는 것도 고려해봤는데 요즘 나온 매물이 많다더라. 숙박업으로 돌리고 세 준 아파트로 돌아갈까도 생각해봤는데 그냥 여기서 살기로 했다.”

요즘 생숙 거주 가구들 사이에서는 숙박업으로 돌린 뒤 자신이 장기투숙 형태로 거주하는 방법이 대세다. 거주인들의 단톡방을 중심으로 이런 방법이 공유된다. 대신 위탁업체는 일정 부분 협의된 위탁수수료를 가져간다. 자신의 집에 돈을 내고 사는 셈이다. 여기에는 숙박과 주거를 행정당국이 구별할 수 없을 거라는 믿음도 은근 깔려 있다. 부산의 한 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단속 인원도 한정돼 있는 데다 서류상 문제가 없다면 주거와 장기투숙의 구별을 현장에서 어떻게 할지도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분양자 입장은 더욱 난감하다. 그들에게 지금의 생숙은 로또가 아닌 골칫거리가 됐다. 엘시티만큼 전국에서 이목을 끈 생숙이 있었다. 롯데건설이 2021년 8월 서울 마곡지구에서 분양한 ‘롯데캐슬 르웨스트’다. 약 10억~20억원대의 분양가인데도 876실 모집에 57만5950건의 청약이 접수됐을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인기 타입의 최고 경쟁률은 6049 대 1, 평균 경쟁률은 657 대 1이었다. 하지만 당첨이 되고 2개월 뒤인 2021년 10월, 정부는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해 생숙 주거 사용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프리미엄을 기대하며 계약에 나섰던 수분양자들은 요즘 이 물건을 팔려고 애쓰는 중이다. 소위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가 붙은 상태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다 마피 물건이라고 보면 된다. 마피가 얼마인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매물로 나와 있는 롯데캐슬 르웨스트 전용 88㎡의 경우 분양가는 16억5800만원이다. 현재 이 매물을 계약하고 싶다면? 돈 한 푼 없이도 가능하다. 공인중개사 말에 따르면 현재 이 물건에 붙은 마피는 1억4000만원이다. 여기에 부가세 환급분 2700만원도 빼준다. 둘을 합치면 계약금 10%인 1억6580만원과 비슷한 액수다. 고로 한 푼도 들이지 않고 계약이 가능하다. “마피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문의는 많은데, 실제 매매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요즘은 잘 없다”는 게 앞선 공인중개업소 관계자의 얘기다.

소형 생숙 실거주자가 타격 클 듯

엘시티 랜드마크타워동이나 롯데캐슬 르웨스트는 액수에서 보듯 다주택자의 투자가 많은 곳으로 추정된다. 주택이 아니기에 정확한 통계는 잡히지 않지만 절세 가능한 투자처를 찾는 자본이 고가의 생숙에 자리 잡은 경우다. 엘시티의 경우 초기 분양 때 투자할 곳을 찾던 법인이나 외국인들이 분양권을 사들이기도 했다. 그나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곳 투자자가 겪는 생숙의 혼란은 전국 각지에 산개해 있는 소형 생숙 실거주자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다.

생숙 용도변경 문제를 정책 피해자 구제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이런 실거주자 때문이다. 이행강제금으로 받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큰 그룹이다. 이들은 전입신고와 개별등기가 가능한 생숙을 주택 대체재로 알았고 일부 은행은 이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내주기도 했으며 생숙 전입을 독려하기 위해 지자체가 직접 출장을 나가 현장 민원실을 운영하기도 한 것을 봤다. 이 때문이라도 투자형 매수자와 달리 실거주자는 구제가 필요하지 않냐는 지적이다.

한 부동산 사건 관련 전문 변호사는 “지자체의 조례에 따른 건축기준을 좀 완화해 주거용 오피스텔 용도변경이 어려운 부분을 해소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주차장 문제의 경우 서울시 주차장 설치 및 관리 조례에 따르면 생숙과 같은 숙박시설의 부설주차장은 시설면적 134㎡당 1대를 주차할 수 있을 수준의 면적을 요구받는데 오피스텔의 경우 75㎡당 1대를 주차할 수 있도록 강제한다. 일시적으로라도 용도변경을 가로막는 조례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년의 유예기간 동안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에 성공한 경우는 전체 생숙 중 1%에 불과하다. 조례의 벽을 뚫을 수 없었다. 하지만 조례 변경을 선제적으로 하지 않는 지자체가 다수다. 대신 10월 14일로 끝난 2년간의 이행강제금 유예 기간만 일단 1년 더 연장됐다. ‘정부가 준주택으로 해주지 않을까’라는 기대의 유효기간만 더 늘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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