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세가 9개월여(41주) 만에 꺾였다. 내수 경기 침체가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의 대출 규제가 이어지고,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주택 매수 심리가 얼어붙은 여파다.
2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번 주(12월 30일 조사)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0%를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값은 작년 3월 넷째 주 이후 줄곧 올랐는데, 41주 만에 상승세가 멈춘 것이다. 서울 25구(區) 중 11구에서 아파트값이 일주일 전보다 내렸다.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한 금천구(-0.05%)와 구로구(-0.04%), 노원구(-0.03%) 등에서 특히 낙폭이 컸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투자 자산으로 여겨지던 서울 아파트마저 가격 상승세가 멈춘 것은 국내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됐다는 뜻”이라며 “주택 거래 침체가 장기화하면 GDP(국내총생산)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설 투자 부진으로 이어져 성장률 전체를 갉아먹을 것”이라고 했다.
◇지방→수도권→서울 외곽 순으로 하락
서울 아파트값은 주택 공급 부족 우려가 절정이던 작년 7~8월엔 주간 상승률이 0.3%를 넘기도 했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에 불안 심리가 확산하면서 매수 수요가 줄기 시작했다. 서울마저 매수세가 끊기자 전국 아파트값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국 아파트값(-0.03%)은 7주 연속 내림세다. 경기도는 11월 중순부터 상승이 멈췄고, 최근 2주 연속 0.02%씩 내렸다.
아파트값 내림세는 지방에서 시작돼 수도권을 거쳐 서울 외곽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서울 25구 중 12월 초 강동구 아파트값이 처음 내리더니 전주 대비 아파트값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구가 5개, 7개, 11개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송파구(0.06%), 서초구(0.03%), 강남구(0.02%) 등 강남 3구는 여전히 오름세지만, 상승 폭이 크지 않았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고금리 여파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 집값은 약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작년 여름부터 금리 인하 기대감에 대출 금리가 내린 가운데 공사비 급등과 PF(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 경색에 따른 주택 공급 부족 우려가 확산했다. 이에 서울과 수도권 핵심 지역의 신축 단지를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급등했다. 작년 1~2월 3000건을 밑돌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7월에는 9216건을 기록해 4년 만에 가장 많았다. 그러나 9월부터 금융 당국이 가계 부채 관리를 위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거래량이 다시 3000건대로 주저앉았다. 게다가 지방은 미분양 아파트가 계속 쌓이면서 새로 집을 사려는 수요가 사실상 실종 상태다. 지난해 지방 5개 광역시와 세종은 모두 연간 기준 아파트값이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부동산 시장은 더욱 얼어붙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탄핵 여파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추진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지자 주택 수요자들의 매수 심리가 더욱 위축됐다”고 했다.
◇“부동산 침체가 경제 성장률 갉아먹을 수도”
서울 아파트 시장까지 확산한 부동산 경기 침체가 내수를 비롯해 국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건설투자는 전기 대비 3.6% 감소하면서 3분기 GDP 성장률을 0.5%포인트 끌어내렸다. 특히 다 짓고도 팔리지 않은 ‘악성 미분양’이 1만5000가구에 육박하는 지방의 경우 건설 기업들의 자금난이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지방은 지역 경제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지금처럼 악성 미분양이 증가하고 지역 건설사가 잇따라 부도를 맞을 경우 지역 경제 전반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전국적으로 주택 매매 거래가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집값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가뜩이나 입주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매매 수요가 임차 수요로 전환하면서 전월세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상반기까지는 조기 대선 실시 여부에 따라 주택 정책에 큰 변화가 발생할 수 있어 단기간에 매매 수요가 회복되기는 어렵다”며 “올해 경기도 아파트 입주 물량이 작년보다 40%가량 줄면서 수도권 전세시장 전반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