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 사업지만 남기고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를 대거 해제했다.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과 송파구 잠실이 약 5년 만에 규제 지역에서 풀렸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침체해 규제 필요성이 줄어든 데다 주민의 재산권 행사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선 규제가 풀리면서 갭투자 수요 등이 몰려 강남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값이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는 12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삼성동 코엑스 주변과 잠실 종합운동장을 잇는 국제교류복합지구 인근 네 동(잠실·삼성·대치·청담동) 아파트 305곳 중 291곳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13일 해제한다고 밝혔다. 2020년 6월 규제 지역으로 묶은 지 4년 8개월 만이다. 토지거래허가제는 투기가 우려되는 지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 집이나 땅을 거래할 때 관할 기초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규제다. 주택은 2년간 실거주 목적 매매만 허용하며, 전세를 끼고 집을 매수하는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가 불가능하다. 현재 서울시 전체 면적(605.24㎢)의 10.8%에 해당하는 65.25㎢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서울시는 “부동산 거래량 감소 등 경제 상황을 고려해 ‘핀셋 규제’로 전환하고 재건축 사안이 없는 지역은 토허제를 해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잠실과 삼성·대치·청담동에서 안전 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 14곳은 투기 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있어 현행대로 규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허가구역으로 남는 아파트는 강남구 대치동 개포우성1·2차, 선경, 미도, 쌍용 1·2차, 은마아파트, 삼성동 진흥아파트, 청담동 현대1차아파트,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우성 1·2·3·4차,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등이다.
서울시는 또 강남구 압구정동, 양천구 목동, 영등포구 여의도, 성동구 성수동 등 주요 재건축·재개발 구역과 투기과열지구(강남·서초·송파·용산구) 내 신속 통합 기획 대상지, 공공 재개발 34곳에 지정된 토지거래허가구역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지난 2020년 6월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등 일대 개발로 인한 투기를 막기 위해 잠실·삼성·대치·청담동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GBC를 비롯한 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이 늦어지자 해당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토허제로 인해 재산권이 침해된다는 불만이 컸다. 같은 강남권에서도 토허제 적용을 받지 않는 서초구 반포 일대 집값이 폭등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울 아파트 시장이 최근 하향 안정화한 것도 토허제 해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전문가들은 토허제 해제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주택 공급이 부족한 강남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지난달 오세훈 서울시장이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검토하겠다”고 한 뒤 잠실동과 대치동 일대 아파트의 호가(呼價)가 뛰고, 거래가 늘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규제가 풀린 지역에서 갭투자가 가능해져 거래량이 늘고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투기를 막고자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거래를 규제한다고 지정한 구역. 이 구역에선 일정 규모 이상 토지를 거래할 때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주택의 경우 2년 동안 실거주 의무가 있어 매매와 임대가 제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