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방 건설 경기를 짓누르는 미분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올해 안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악성 미분양 아파트 3000가구를 사들인다. LH가 지방 미분양 직접 매입에 나서는 것은 2010년 이후 15년 만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 3년간(2008~2010년) 미분양 아파트 약 7000가구를 사들였는데, 정부는 올해에만 3000가구를 매입하고 필요할 경우 물량을 더 늘리기로 했다. 아파트를 다 짓고도 팔리지 않은 준공 후 미분양이 11년 만에 최대치로 쌓이고, 미분양 여파로 공사 대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지방 중소 건설사의 도산이 잇따르자 정부가 ‘LH 직접 매입’이라는 ‘산소 마스크’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부산·대전·안산에서는 상반기 중 총 4조3000억원 규모의 철도 지하화 개발 사업이 조기 착수된다. 사회기반시설(SOC) 투자 확대로 건설사 일감을 늘리고, 건설 관련 일자리를 늘려 지역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정부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민생 경제 점검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지역 건설 경기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건설 투자가 전년보다 2.7% 감소하면서 전체 경제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지방 미분양 주택이 급증하면서 지역 경제 침체가 길어지자 적극적인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대책은 미분양 아파트 매입 등을 통한 지역 건설사의 자금난 해소와 일감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악성 미분양이 쌓여 자금 흐름이 막힌 건설사에 유동성을 지원하고, 철도 지하화 등 대규모 개발 사업을 활성화해 ‘일감 보릿고개’에 시달리는 건설업계에 일감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다만, 건설업계에선 양도세·취득세 같은 세제 감면이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완화 등 적극적인 수요 진작 대책이 빠진 것이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미분양 사주고 兆 단위 개발 추진
정부가 연초부터 건설 경기 활성화를 위한 보완책을 내놓은 것은 그만큼 지역 건설 경기 침체의 골이 깊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과 다른 산업으로의 파급 효과가 큰 건설 투자가 지난해 2.7% 역성장하면서 국내총생산(GDP)을 0.4%포인트 끌어내렸고, 올해도 한국은행은 건설 투자가 1.3%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달 건설업 취업자는 약 17만명 줄어 12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을 기록했다. 작년 12월 말 기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1480가구로 11년 만에 가장 많았고, 이 중 80%(1만7200여 가구)가 지방에 몰려 있다.
정부는 우선 올해 안에 LH가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3000가구 규모로 사들이기로 했다. 앞서 LH는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악성 미분양이 5만 가구가 넘었던 2008~2010년에 준공 후 미분양 총 7058가구를 분양가의 70% 이하로 매입한 바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지방 악성 미분양 1만7000여 가구 중 3000가구를 사는 건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비교해 적지 않고, 필요하면 추가 매입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LH가 매입한 미분양 아파트는 6년간 임대 후 분양으로 전환하는 ‘든든전세주택’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지방 주택 수요를 확대하기 위해 현재 비(非)아파트에만 허용 중인 ‘매입형 등록 임대’를 전용면적 85㎡ 이하 지방 악성 미분양 아파트에도 허용하고, 디딤돌 대출을 받아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사면 금리를 낮춰주기로 했다.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CR 리츠)도 상반기에 출시할 예정이다.
지역 건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상반기 중 부산과 대전, 안산에서 4조3000억원 규모의 철도 지하화 사업의 기본계획 수립에 나선다. 철도 지하화는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지상 철로를 지하화하거나 인공 지반으로 덮고, 지상 부지를 주거·상업 시설 등으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부산의 부산진역~부산역 구간(약 37만㎡), 대전 대전조차장(약 38만㎡), 안산 초지역~중앙역 구간(약 71만㎡)이 개발 대상이다. 그린벨트(GB) 해제 총량 예외로 인정하는 국가·지역전략사업도 이달 중 선정해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가 큰 산업단지나 물류단지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국토 관련 SOC 예산 17조9000억원 중 역대 최고 수준인 70%(12조5000억원)를 상반기에 집행하기로 했다.
◇건설업계 “세제·금융 지원 빠져 아쉬워”
업계에선 정부 대책이 지방 미분양을 일부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평가하면서도 실질적인 세제나 금융 지원책이 빠진 것은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건설업계에선 지방 미분양 전체에 대해 취득세 중과를 배제하거나 50%를 감면해주고, 해당 주택을 5년 이내 양도하면 양도세를 100% 감면해주는 등 적극적인 수요 진작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방 건설 경기 회복을 위해 건설업계의 노력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지방 미분양 문제는 3~4년 전 부동산 호황기 때 과잉 공급된 물량과 건설사들의 과도한 분양가 인상 책임도 있다”며 “무조건적인 정부 지원 확대를 요구하기보다 원가 절감을 통한 분양가 인하 같은 민간의 자구 노력도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