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가구. 올 1분기(1~3월) 서울에서 일반에 분양한 아파트 물량이다. 2월 서초구 방배동에서 공급한 ‘래미안 원페를라’가 서울의 유일한 분양 단지였다. 인천도 1분기에 분양한 아파트가 단 1곳, 196가구뿐이었다.

수도권 아파트 시장이 역대 최악의 ‘분양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9일 부동산R114 자료에 따르면, 1분기 공급 물량이 경기도 1179가구를 포함해 수도권 전체 1857가구에 그쳤다. 우리나라 인구의 51%(2635만명)가 밀집한 수도권에서 올해 새로 공급된 아파트가 2000가구도 안 되는 것이다. 작년 1분기 분양 물량(1만6181가구)과 비교하면 89%가 줄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0년 이후 역대 가장 적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전역에서 한꺼번에 분양 아파트가 급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런 역대급 분양 가뭄은 2~3년 뒤 입주 물량 감소로 이어져 아파트 매매·전세 시장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수도권 새 아파트로 이주하려는 수요층의 선택지가 크게 줄면서, 특히 청년층과 신혼부부들의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1분기 수도권 분양, 역대 최저

올 1분기 수도권 분양 물량 1857가구는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분양 시장이 얼어붙었던 2009년 1분기(2529가구)보다도 27% 적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과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등의 이슈로 주택 경기 침체가 시작된 2022년 하반기부터 수도권에서 신규 택지 개발 사업이 사실상 ‘올스톱’된 영향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통상 주택 사업을 할 때 인허가를 받고 착공·분양까지 1~2년 정도 시차가 있는데, 2022년부터 인허가 물량이 줄어든 것이 분양 가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0~21년 2년 동안 41만 가구가 넘었던 수도권 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2022~23년엔 약 32만 가구로 20% 넘게 줄었다.

PF 부실 문제로 시행사가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아파트 사업을 포기한 경우도 적지 않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분양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수도권 외곽에선 시행사들이 금융권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해 아파트 부지 계약금만 내고서 사업 추진이 안 되는 경우도 흔하다”고 했다. 경기도 평택과 이천 등 새로 조성된 택지 지구에서 최근 1~2년 미분양이 속출해 인근에서 사업을 준비하던 업체들이 분양 시기를 무기한 연기하기도 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고금리 여파로 대형 시행사들도 신규 사업을 꺼리고, 브리지론에서 본 PF로 넘어가지 못해 좌초된 사업도 많다”면서 “서울에선 공사비 급등으로 재건축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심해져 일반 분양을 계속 미루는 것이 분양 급감의 주요 원인”이라고 했다.

◇“공급 부족 당분간은 계속될 것”

문제는 수도권의 분양 가뭄이 단기간에 해결될 분위기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애초 1분기 분양을 하려던 수도권 단지들도 대통령 탄핵 이슈와 경제 여건 불확실성이 확산하면서 일단 분양을 늦춘 곳이 대부분이다. 지난달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1453가구 규모의 ‘시티오씨엘 7단지’가 분양 일정을 연기했다. 2월 경기도 의정부에서 공급될 예정이던 ‘힐스테이트 회룡역 파크뷰’(1816가구)는 여전히 분양 일정을 못 잡고 있다. 직방 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분양을 예고했던 전국 아파트 중 실제 분양에 들어간 가구는 39%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도심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낼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나 3기 신도시 공급 기간 단축 등을 통해 수도권 분양 물량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당장 내년 공급 물량이 올해보다 절반 정도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 만큼 시장에 물량이 확대될 것이란 신호를 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5년 안에 입주를 시작하는 3기 신도시 공급 물량을 20만호 정도 추가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수도권 선호 지역의 신축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수록 분양가 인상, 청약 경쟁 심화 등 서민 주거 불안이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