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만 23군데가 있는 1만2032가구의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 이 아파트 놀이터에는 국내 스타트업 ‘제이치글로벌’이 개발한 특수한 바닥재가 깔려 있다. 한여름 더위에 놀이터 바닥이 달아올라도 표면 온도를 최고 15도 정도 낮춰주는 신소재를 사용했다. 어린이들이 놀이터에서 당할지 모르는 화상 사고를 막기 위해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제이치글로벌과 협업해 열을 차단하는 바닥재를 깐 것이다. 현대건설 측은 “앞으로 지을 힐스테이트 단지에도 추가 적용하기 위해 해당 스타트업과 공사비 등을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건설사들이 신기술을 확보하고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스타트업과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건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대형 건설사들이 자체적으로 기술 개발에 나서는 대신 저렴한 비용으로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스타트업과 손잡는 것이다. 스타트업으로선 개발한 기술력을 현장에 적용하고 보완할 수 있어 대형 건설사와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한 건설 업계 관계자는 “필요한 신기술을 단기간에 ‘수혈’하는 스타트업과 협업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 건설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스타트업 통해 신기술 수혈

자체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협업할 업체를 찾는 건설사도 많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해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반도체 장비 업체 ‘투인테크’를 발굴했다. SK에코플랜트는 압축 공기를 일정 간격으로 분사해 반도체 표면에 붙은 미세 이물질을 제거하는 투인테크의 기술을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에 적용할 계획이다. DL이앤씨도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한 스마트 안경 플랫폼 스타트업 ‘와트’와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건설 현장에서 스마트 안경을 사용해 설비 특성이나 필요한 건설 도면을 확인하는 식이다. 삼성물산은 행동 분석으로 사고 위험을 예측하는 설루션을 개발한 ‘플레이태그’의 기술을 경기도 용인에 있는 시니어타운 삼성노블카운티에서 시범 적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입주민에게 동의를 받고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에 3D 카메라를 설치했다. 롯데건설과 협업했던 스마트 도면 스타트업 ‘팀워크’의 정욱찬 대표는 “당시 기술을 시험해 보니 건설 현장에서는 필요한 도면을 찾을 시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돼서 이후에는 인공지능(AI)이 스스로 필요한 도면을 찾아주게끔 기능을 고도화했다”고 밝혔다.

건설사들은 새로운 기술을 선점하고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기 위해 스타트업 투자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호반건설은 자사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플랜에이치벤처스’를 통해 친환경 콘크리트 제조 기업 ‘에코리믹스’, 복사 냉난방 패널 기술을 보유한 ‘아론에이아이티’ 등에 투자했다. 우미건설도 부동산과 기술을 결합한 프롭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고 있다.

◇신성장 동력 마련에 사활

건설사들이 스타트업 기술 확보에 나서는 것은 빠르게 신기술을 확보하려는 경쟁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체 연구·개발(R&D) 여력이 부족한 영향도 있다. 대형 건설사의 연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대부분 1%를 밑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갈수록 건설사의 생산성과 수익성이 낮아지는 만큼 비용 효율화를 위한 기술 개발이 절실하지만 내부적으로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외부에서 기술을 찾는 것“이라고 밝혔다.